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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수구세력, 다시 안보장사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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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14 21:16 조회27,0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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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안보 프레임을 부각시켜 선거를 이념전으로 전환시키려는 수구세력들의 움직임이 전면화된 느낌이다. 지난주 안보장관회의 이후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직접 거명하며 비판했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복수를 거론하며 적 도발 때 10배까지 대응사격을 하라는 등 전례없이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수구언론 역시 탈북자 문제에 이어 강정해군기지 문제를 야권 공격의 소재로 삼기 위해 여념이 없다. 지난 주말 ‘중국, “이어도는 중국의 관할 해역”’이란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로 올린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신문은 중국 해양국장이 3일 <신화통신>과 한 인터뷰를 뒤늦게 발견해 키웠다. 며칠 늦었더라도 보도가치가 있다면 기사를 쓸 순 있다. 문제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란 점이다. 중국이 이어도(중국이름 쑤옌자오)를 자신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되는 암초라고 주장한 것은 여러 해 됐고 이 지역 정찰활동은 이미 2005년부터 벌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의 3000t급 순찰함 하이젠 50호가 이어도와 가거초 부근 해역에서도 순찰활동을 벌인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중국 해양국장의 발언은 이런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를 모를 리 없는 <조선일보>가 뒤늦게 이를 1면 머리로 올린 데는 분명 다른 의도가 있다. 그 의도는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고 좌파의 무책임성을 비난하는 틀로 짜인 지면배치에서 확인된다. ‘항모를 가진 중국이 이어도 분쟁을 유도해 제주 앞바다까지 노린다’며 위기감을 증폭시킨 뒤 강정기지가 건설되면 이어도 분쟁 때 우리가 10시간이나 먼저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며 기지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곤 화살을 강정기지 반대자들에게 돌렸다. ‘이어도 영유권 떼쓰는 중국에는 침묵하면서 제주기지와 관련없는 미국은 비판’하는 이상한 좌파라는 것이다.


기지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강정기지는 총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대표는 건설 중단을 요구한 반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김지윤씨가 해적기지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안보에 무책임한 좌파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똑 참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좌파를 공격하기 위해 이어도 문제를 강정기지와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강정기지를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의심해 왔지만 우리 정부는 부인해 왔다. 이제 <조선일보> 보도로 정부가 거짓말한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이어도 문제에서 물러서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강정기지의 존재가 안보를 튼튼히 하기보다는 이어도를 분쟁지역화하면서 해상갈등을 증폭시키고 이 지역을 군비증강의 악순환에 빠뜨릴 소지가 커졌다. 안보를 정략에 이용하는 수구세력이 말로는 국익을 내세우지만 실제론 국익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도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어 분쟁지역화하는 것이 하등 이익이 될 게 없다.


강정기지 사태가 지금 같은 갈등상황으로 비화하게 된 근원적 책임 역시 ‘이상한 좌파’들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반대운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정부와 군에 있다. 정부와 군은 비민주적인 입지 선정, 자연생태계 훼손, 기지 목적에 대한 일관성 없는 발언과 설계상의 오류에 대한 호도 등으로 스스로 반대진영을 결집시켰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주도 국회조차 올해 기지예산 전액을 삭감했겠는가. 이를 외면한 채 안보 프레임으로 국민을 호도하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안으로는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을 증폭시켜 갈등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밖으로는 대외정책에서 운신의 폭을 제한할 뿐 아니라 대외관계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거 독재 시대엔 수구세력이 선거 때마다 안보장사를 통해 큰 이득을 봤다. 하지만 이젠 수구세력의 안보장사에 넘어갈 정도로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지 않고 주변국들도 녹록하지 않다. 시효가 지난 낡은 프레임에 매달리다간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2.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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