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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숙] 낮은 곳의 인권, ‘공감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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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28 09:55 조회18,6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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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꽃이 필 수 있을까, 법에도 눈물이 있다지만, 법처럼 굳은 땅에 어떻게 싹이 틀까. 바위 밑에서 민들레가 돋아나듯, 아마도 꽃 피우는 법이 따로 있기는 있을지 몰라.”(정희성, ‘겨자꽃 핀 봄날에’)


국내 최초의 비영리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이 올해로 여덟살이 되었다. 2003년 12월, 사법연수원 졸업 후 아름다운재단을 찾아온 염형국 변호사 한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모두 8명이다. 전직 검사, 유명 법률회사(로펌)의 변호사였던 그들의 본업은 공익법 활동이다. 높은 수임료와 배당된 사건의 승소를 위해 일했던 그들은 낮은 곳의 인권이 되는 사건을 선별해 변론한다. 그들은 법이 여전히 멀고 어려운 사람들,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을 한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성소수자, 난민, 도시가스 검침원, 청소노동자, 공익제보자 등 변방의 사람들은 ‘공감’이 가장 환대하는 고객이다. 변론과 상담은 모두 무료이며, 때론 법을 지키라고, 때론 법을 바꾸라고 주장하며 어디든지 간다. 법정과 거리집회, 공청회 현장은 소수자 편에서 ‘꽃 피우는 법’을 꿈꾸는 이들의 일터이다. 비좁은 월세 사무실, 일주일의 반을 야근해야 하는 넘치는 일감과 사법연수원 동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급여지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말한다. 기쁜 것은 공익법 노동이 지닌 의미 때문일 게다. 누군가의 억울한 삶에 희망이 되는 노동, 하나의 사건을 통해 약자를 외면한 법의 편파성과 사회적 불감증을 일깨우는 노동은 가슴 벅찬 일이다.

 

처음 몇년간 사람들은, 아니 그들마저도 전무후무한 실험조직인 ‘공감’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싶었다. 개인들과 몇몇 법률회사 등 민간 기부로만 운영되어 늘 최소 예산으로 일해야 하니 걱정은 당연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최근 ‘공감 현상’이 불고 있다. ‘공감’에 공감하는 변호사와 예비 법조인이 늘고 있다. ‘공감’에는 인턴 신청자가 넘쳐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대상의 인권법 캠프는 늘 만원이다. 공익과 인권의 도구가 될 법의 사용법을 ‘재발견’한 이들은 기쁘고도 전율스럽다고 했다. 전국 로스쿨마다 ‘공익인권법 학회’가 생겼고, 일부 로펌들도 공익법 활동을 시작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3년 전 재단법인 ‘동천’을 설립해 변호사들의 프로보노(pro bono)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올해 법무법인 로고스는 ‘희망과 동행’을 만들었고, 공익법센터 ‘어필’은 ‘가치를 향한 같이 걷기’를 모토로 공익법 활동을 시작했다. 새해에는 제2의 ‘공감’인 ‘희망을 그리는 법’이 출범한다. 벌써 구성원들의 사법연수원 동기 수백명이 이 단체를 지원하는 기금도 만들었다. 빠르게 확산되는 공익법 활동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물결은 예사롭지 않다.

 

법조계의 젊은 ‘보노보’들의 등장은 법의 정의로운 집행에 대해, 낮은 곳의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냉기를 성찰하게 해준다. 앞으로 공익법 활동의 주체와 영역이 다양해질 것이며, 그럴수록 소수자 인권은 조금씩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겨질 것이다. 이들이 개척해가는 약자를 위한 공익법 운동은 인권의 경계를 넓혀주는 새로운 실험이자 사회적·공적 자산이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한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라고. 새해에는 공익적 가치를 자기 삶의 가치로 연결하려는 젊은 그들의 용기있는 선택을 격려하고, ‘공감 현상’에 물과 햇빛이 되어줄 지지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한겨레. 201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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