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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비례대표제가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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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28 09:53 조회18,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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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민주통합당이 탄생했다. 이명박 정권과 정책공조를 하기로 했던 한국노총이 왜 거기에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됐든 수십년 후퇴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조금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잘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실 이번 통합은 노무현 정권 출범 시의 옛 민주당 세력에 약간의 외부인사들이 가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의 어법을 차용해서 말하면 ‘젊은피’가 조금 수혈된 것일 뿐,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전망을 열어주는 큰 변화는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정권교체이고, 이를 위해서는 야권의 통합이나 연대가 긴요하다. 그러나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기존 정치권은 이 견해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 불신은 통합 이벤트나 소량의 ‘젊은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다고 해서 다양한 견해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 양념을 친 현행 선거제도로는 정치불신을 해결할 수 없다. 40%도 안되는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모든 것을 가져가는 현행 제도에서는 나머지 60% 이상의 표심이 고려되지 않는다. 생태가치, 노동가치, 후대에 대한 배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열망 등이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까지 포함시켜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면 소수의 견해가 지금보다 훨씬 더 힘을 얻을 것이다.

 

기존 정당이나 의원들은 비례대표를 늘리면 지역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기 밥그릇이 작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례대표 확대를 반대했다. 그러나 정당명부제를 도입해 비례대표 의원 수를 크게 늘린다고 해서 지역구 의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크게 유리한 점도 있다. 지역구 출마자가 비례대표로 나올 수 없게 되어 있는 현행 선거제도와 달리 지역구에 출마하면서도 정당명부에 자기 이름을 올릴 수 있어, 지역구에서 낙선하더라도 의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독일 외무장관을 지냈던 피셔는 오랫동안 의원을 했지만 지역구에서는 당선된 적이 없다.

 

지역구를 그대로 두고도 얼마든지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수 있다. 그래도 의원 수는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정당명부제에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의석 수에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 의석 수가 300개라고 할 때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50%를 얻고 지역구에서 150명이 당선되었다면, 정당명부에 등록된 후보 중에 지역구 당선자 외에는 아무도 의원이 되지 못한다. 50%가 지역구 당선자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50%를 얻고도 지역구에서 100명밖에 당선되지 못했다면 정당명부에 들어있는 50명이 의회에 들어가게 된다. 50%를 얻었지만 180명이 당선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전체 국회의원 수가 360명으로 늘어난다. 다른 당에서는 120명이 당선되었지만 50%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당명부에서 60명이 의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례대표를 크게 확대하면 지역구에서는 한 명의 당선자를 못내도 적어도 0.4% 이상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라면 1명 이상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녹색당, 진보당, 사회당, ‘해적당’, 반원자력당 등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견해를 대변할 것이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를 통해 회복을 넘어 발전할 것이다. 기존 정당과 예비정당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겠다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통합과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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