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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통합 야당, 경제 민주화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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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14 11:16 조회18,3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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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이 참가한 통합 수임기구가 출범했다. 민주당 내부의 반발 등으로 퇴색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야권통합이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추었으니 다행이다. 통합되는 정당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자산을 꼼꼼하게 챙기되 부채를 은근히 누락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싸운 공로와 성취를 소중한 유산으로 챙기되 신자유주의 정책과 부실 경제개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책임을 회피하지 말았으면 한다. 반MB정서에 기대어 선거를 이기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아니라 국민의 아우성과 시대의 요구에 해답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구하는 정직한 자세를 보고 싶다.

 
김대중 정부가 탄생했을 때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상상을 초월하는 간난신고 가운데서 꺾이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버텨주신 김대중 대통령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렸다. 그가 외환위기 극복에 앞장서고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자랑스러웠고 감격했다. 하지만 나는 김대중 정부를 보면서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압력이 있기는 했지만 정리해고, 공기업 사유화, 은행 해외매각 등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데 아연실색했다. 특히 롯데호텔 아줌마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을 경찰력으로 강제진압했을 때 나는 괴로웠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김대중 정부는 여기까지다. 다음에 좀 더 잘하면 되지. 그래서 노무현 후보를 도왔다. 이인제 대세론이 한창일 때 한나라당과 한판 승부를 제대로 벌이고 개혁을 해낼 수 있는 후보는 노무현밖에 없다고 점찍었고 미친듯이 열심히 정책을 준비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승리했고, 선거 바로 다음날 내게 “정치는 내가 할 테니, 정책은 유 교수가 하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가슴이 뛰었고, 어깨가 무거웠다. 강력한 재벌개혁, 부동산투기 종결, 교육과 연구개발 혁신, 산별노조체제, 비정규직 사유 제한, 동북아경제공동체… 이런 걸 생각하며 비장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아직 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노무현 정부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개혁과 분배정의를 기대하고 뽑은 정권의 첫 경제정책이 법인세 인하였고 첫 국정 목표로 내세운 것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였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에 나서자 학교에서 교수 대외활동 규제안을 교수회의에 상정했던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 나는 교수회의에서 선언했다. “교수 노릇 지겨워서 그만두려 했었는데 악착같이 더 해야겠다. 대한민국 헌법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 나는 분노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농단과 민생경제 파탄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끔찍하고 잔인한 세월이다. 단, 나는 이명박 정부 비판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과거 민주개혁 정부들의 실패에 관한 철저한 분석과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 아니다. 민주개혁 정부에 실망한 국민이 뽑은 정부다. 어쩌다가 양민학살, 차떼기, 성희롱, 날치기에 빛나고 급기야 디도스 공격까지 감행하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었는가? 오죽하면 국민이 그들을 택했겠는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국민에게 권력을 다시 달라고 한다면 그런 후안무치가 어디 있겠는가?

 

민주개혁 정부는 정치 민주화에서 많은 공을 세웠지만 경제 민주화에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수구 우파세력은 민주개혁 정부가 분배에 치우쳐 성장을 게을리했다고 엉뚱한 주장을 했다. 진실은 그 반대다. 성장만 놓고 보면 제법 잘했지만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어 민생이 피폐해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5.0%,노무현 정부 4.3% 이명박 정부는 3.1% 정도) 이제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이고, 경제 민주화 없는 정치 민주화는 공허할 뿐이라는 것을.

 

경제 민주화라니, 경제도 민주주의로 한다는 말이냐? 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답한다. 그렇다, 경제도 민주주의다. 모든 인간은 존엄한 인격체이며 누구나 자신만의 가능성을 추구할 여건과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시장원리는 존중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장이 사람을 위해 활용되어야지 사람이 시장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재벌독식은 안된다. 1%를 위해 99%를 희생하는 경제는 안된다. 그렇다, 경제도 민주주의다. 자유만 중요한 게 아니라 평등도 중요하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의 정신이다.

 

무릇 용기 있는 자는 반성할 줄 알고, 졸렬한 자는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에 급급해한다. 과거에는 이렇게 잘못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잘하겠다고 당당하게 국민 앞에 고백하는 통합야당이 되기를 바란다. 과거에는 경제 민주화를 외면했지만 앞으로는 경제 민주화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하는 통합야당이 되기를 바란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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