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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신해혁명 100주년, 다시 묻는 공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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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1-22 11:13 조회18,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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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이 ‘쌍십절’이란 걸 아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 100년 전 10월 10일 후뻬이성(湖北省) 우창(武昌)에서 혁명파가 주도한 청왕조 타도 운동(武昌起義)이 성공했다. 그를 계기로 혁명의 물결이 전국에 번져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이 수립될 수 있었다. 쌍십절은 쑨원(孫文)이 이끄는 혁명세력인 국민당이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라 불리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정을 수립한 1911년(신해년)의 혁명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 그 100주년을 맞아 중국어권에서는 각종 기념행사로 떠들썩하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두 차례 학술행사가 열렸을 뿐이다. 그러나 100년 전 한국의 선각자들은 신해혁명이 동시대 한국인들에게도 살아있는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건으로 중시했다.

 

1911년 10월의 우창 거사 성공 직후부터 한국인들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의 한국병합 이후 조국 해방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이 중국 공화혁명의 성공에서 한국 독립과 혁명의 지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조성환은 아시아 최초의 공화혁명인 신해혁명이 “비단 중국만의 행복이 아니라 아시아의 행복이고 우리 나라의 행복”이라고 보았다. 동아시아가 연동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신해혁명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과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현재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을 따져묻는 일이야말로 100주년의 혁명을 기리는 핵심 과제일 터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미를 묻기 전에 중국쪽의 동향부터 돌아보자.

 

중화민국이란 국호를 그대로 계승하고 아직 ‘민국’이란 연호(올해가 민국 100년이다!)를 사용하고 있는 대만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그렇게 열기가 뜨겁지는 않다. 현재 국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기에 그 정도라도 기념하는 것이지 전처럼 대만 독립지향이 강한 민진당이 정권을 장악한 동안에는 신해혁명은 남의 일이었을 뿐이다. 장제스(蔣介石)부자가 통치하던 시절 국민당중심의 역사관(黨史觀)이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가져 신해혁명이 중국현대사의 기점으로 소중히 기념되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통일과 독립의 논쟁이 사회를 양극화하는 대만에서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일은 곧바로 내부 정치 논쟁으로 비화하기 십상이다. 내년 초 총통 선거가 있기에 더욱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만에 비해 대륙에서는 기념행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공산당 중심의 역사관(黨史觀)이 정통으로서의 절대적 위력을 발휘하던 예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해혁명을 주도한 혁명파를 정통으로 삼고 불철저한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곧 구민주주의혁명)으로서 그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그 과제를 계승한 공산당의 주도 아래 각계 민중 연합 세력이 철저하게 수행한 것이 신민주주의혁명이라는 견해가 공식적인 역사해석이다. 그런데 대륙에서는 지금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립하던 시기의 사고방식 곧 ‘내전적’(內戰的) 역사인식에서 벗어나 다원적 역사인식이 추구되고 있다. 요즈음 학계의 동향에서뿐만 아니라 신해혁명 관련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그런 변화가 물씬 느껴진다.

 

필자가 견문한 범위에 한해 판단하더라도, 1911년을 전후한 시기 각축하던 세 정치체력 즉 청조 황실을 중심으로 절대 왕정을 수립하려던 보수파,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던 개혁파 그리고 청조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우려던 혁명파를 고루 중시하며 그들의 갈등과 타협을 균형있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더 나아가 청조 말부터 지금까지의 몇 차례 역사적 분기를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보자면서 ‘긴 시간대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관점의 미묘한 분화도 포착된다. 혁명의 고통과 폐해를 중시하며 혁명과의 결별을 강조하는 입장과 혁명의 정당성을 인정하려는 입장 사이의 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한 차이는 신해혁명에 대한 평가에도 스며들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중국 근현대사에서 필요한 것은 개혁인가 혁명인가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된다. 물론 개혁과 혁명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시도도 있다. 예를 들면 혁명의 목적은 개혁이라는 독특한 논법을 펴는 주장도 들린다. 종래처럼 개혁을 곧 개량주의요 기회주의라고 해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이래의 개혁은 사실상 혁명이라는 주장과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올 초 튀니지에서 발원해 주변으로 확산해간 자스민혁명과 같은 변화를 혼란이라고 우려하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러한 여러 입장들이 과거 해석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그리고 미래의 중국에 대한 전망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홍콩을 거점으로 중국어권 전체에 발신하는 주간지인 『아주주간』(亞洲週刊)의 소리도 들어볼 만하다. 신해혁명을 카버스토리로 다른 최신호(10월 16일자)는 대륙의 변화를 적극 해석한다. 그런 변화는 중국이 내전적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좀더 자신감 갖고 중국 미래의 평화 통일을 전망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면서, 대륙에서 ‘민국열기’(民國熱潮)가 확산된다고 주장한다. 1911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민국시대’가 예전처럼 혼란과 국민당 독재로 얼룩진 시기가 아니라 문화적 포용력이 있는 다원사회였고 ‘한층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향한 기점’이었다고까지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민국열기란 현상은 과장된 것 같다. 그 주장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라고 본 오늘의 중국 현실에 대비된 ‘민국’ 개념을 부흥시켜 좀 더 개방적인 중국을 요구하려는 『아주주간』의 희망섞인 논조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또한 대륙 밖 화인(華人)세계에서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하나의 방식일 터이다.

 

신해혁명을 둘러싼 이 모든 시각 차이는 각자가 처한 역사적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차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이 ‘공화’임을 간관해서는 안 된다.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나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이란 국호에 공통된 것이 공화의 이념 아닌가. 바로 이 특징을 궁구할 때 신해혁명의 현재적 의미는 또렷해진다.

 

공화주의는 군주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라거나 군주 없는 정치제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화주의가 지금도 필요한 것은 그것이 행위주체의 공적인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의사결정 때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적 참여가 점점 더 요구되는 오늘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공공성에 대한 관심과 결합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공화주의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와 미국의 권력 교체가 중첩되는 전환의 2012년을 앞두고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왜 지금 공화인가를 다시 묻는 것은 동아시아인이 역사의 주인으로 학습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 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통신. 201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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