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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복지부동 일본 정부, 끝까지 이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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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23 12:04 조회18,8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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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단편소설 <끝까지 이럴래?>는 종말에 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태를 ‘쿨하게’ 그려낸다. 내일 지구가 거대한 혜성과 부딪쳐서 멸망하지만, 아파트의 위층과 아래층에 사는 등장인물들은 그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진부하고 뻔뻔스러운 삶을 지속한다. 그들이 당면한 관심사는 세상의 종말도 아니고, ‘그래도 사과나무를 심는’ 것도 아니다. 최대 관심사는 위층 또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이고, 어떻게 하면 자기 집이 소음의 진원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교묘하게 꾸며내서 상대방을 속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두 사내 모두 내일 세상이 멸망하고, 그들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오늘 당장은 소음 때문에 싸우고, 그 순간 어쩌면 상대가 자기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떨기도 한다. 그들에게 내일이란 없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두 달이 지난 지금의 일본 정부는 마치 박민규 소설의 등장인물 같다는 느낌을 준다. 보도는 뜸해졌지만, 사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핵연료의 붕괴열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었을 뿐 파괴된 원자로와 핵연료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방사능은 처음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원자로를 냉각하기 위한 물도 여전히 소방관을 통해서 밖에서 주입된다. 이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하는 일은 <끝까지 이럴래?>의 두 사내처럼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이상이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사고 초기에 후쿠시마 원전 노동자의 5년간 방사능 허용량을 100밀리시버트에서 250밀리시버트로 높였고,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 어린이의 허용량을 연간 20밀리시버트로 조정했다. 이유는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을 순조롭게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그들은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것도 전기가 순조롭게 공급되는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서이다.

한국에서 성인의 방사능 피폭 허용량은 연간 1밀리시버트이다. 그 이상 방사능에 피폭당하면 수년 또는 수십 년 후 암 같은 중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원전 노동자의 피폭 허용량은 1년 평균 20밀리시버트이다. 일반인보다 20배 이상 많은 방사능이 허용되는 셈인데, 방사능이 상존하는 곳에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들이 나중에 암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보다 높다.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원전에 투입된 50인 결사대나 노동자 수천명이 시간이 지나면 암으로 죽을 가능성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다. 성인에 비해 몇 배나 더 방사능에 취약한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에 오염된 운동장에서 뛰노는 일본 어린이가 자라면서 갑상샘암이나 백혈병 또는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고통받을 가능성은 한국 어린이보다 훨씬 큰 것이다.

원전 21기 들어선 한국 상황도 일본과 다르지 않아


일본 정부의 이러한 조처는 모두 현재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면에서 이 조처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놀이터나 운동장이 오염되었다고 해서 아이들을 집안에 가두어놓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끝까지 이럴래?>의 두 사내처럼 내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일본 정부의 행태는 지극히 냉소적이다.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죽을 터이니, 몇 년 먼저 죽든 좀 더 고통을 당하다 죽든 큰 차이가 없다는 분위기가 엿보이는 것이다.

방사능 허용량을 크게 높이는 조처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오늘의 현실을 불가피하게 인정하면서, 동시에 내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 오염된 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방사능 허용량을 크게 높일 수밖에 없지만, 내일은 더 좋은 세상에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원자력발전을 서서히 없애나간다는 선언이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원전 21기가 좁은 땅에 밀집해 있는 한국 상황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20년 동안 이 땅에는 원자로가 15기가량 더 들어선다. 원자로가 하나씩 늘어날수록 희망이 들어설 자리도 조금씩 줄어든다. 우리에게도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것일까?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시사IN, 201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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