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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비싸도 미치진 않은 미국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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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21 19:02 조회19,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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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미국이라면 최고인 줄 알고 그래서 뭐든 미국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미국식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미국식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어줍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요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대학 등록금 문제도 그러한 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등록금이 비싼 유일한 나라다. 그것도 절대 액수 기준으로 그렇고, 가계수입 대비 부담률을 보면 우리나라가 더 비싸다. 이렇게 예외적인 미국의 사례에 견주어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이 비싸지 않은 편이라고 하는 궤변도 있다. 어쨌든 미국은 고등교육에도 시장논리와 경쟁원칙을 철저히 적용해서 대학이 우수하다는 견해가 팽배해 있다. ‘미친 등록금’을 초래한 대학자율화의 근거였다.

하지만 미국도 고등교육을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기회평등의 관점 또한 유력하게 작용한다. 우선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주립대학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공립대학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22%인데 반해 미국은 67%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장학금 및 학자금 융자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값비싼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가정형편에 따라 필요한 만큼 장학금을 지급하여 돈이 없어 학교에 못 다니는 일은 없도록 한다. 일례로 하버드대학의 경우 2008년 신입생 1652명 중 60%가 넘는 999명이 이러한 장학금을 받았다. 여기에 성적 조건 따위는 없다.

등록금 문제가 불거지니 또다시 기여입학제를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하여 국가재정에만 의존하기보다 부유층의 자산을 활용하자는 얘기다. 기여금을 장학금으로 사용하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냐는 것이다. 흔히 이런 주장을 하면서 미국에서는 하는데 왜 우리는 못 하느냐고, 우리 사회의 지나친 평등주의가 이런 실용적인 해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한다.

이는 착각이다. 미국에는 돈으로 입학을 사는 기여입학제가 없다. 필자는 혹시 미국에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예일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미국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펄쩍 뛰었다. “기부문화가 발달된 미국에서는 졸업생들의 소액 기부가 활발하다. 수많은 졸업생들의 꾸준한 소액 기부가 모이면 몇몇 대규모 기부보다 큰돈이 된다. 그런데 만약 돈을 많이 낸 사람에게 자녀입학특혜가 주어진다면 누가 빠듯한 살림에 애교심을 발휘하여 기부를 하고 싶겠는가? 아마도 동창회가 입학 장사에 강력 항의하고 기부금은 뚝 떨어질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기여금과 입학을 직접 주고받는 기부금 입학제도와는 다르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기부와 입학 사이에 약간의 시차만 둘 따름이지 본질은 똑같기 때문이다.

미국 제도를 본떠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도 역시 유감이다. 시험성적 위주의 평가를 극복하고 지원자의 성격,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파악하여 학생선발에 반영한다는 취지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복잡하고 불투명한 제도는 부유층 자녀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의도는 순수했다고 보고 싶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동기가 매우 불순했다는 사실을 과연 알았을까? 미국의 명문대학들도 절대다수의 입학생을 객관적인 학업성취도를 기준으로 뽑고 있었는데, 유대인 입학생이 계속 증가하자 이를 제한하기 위한 편법으로 1920년대에 새로운 입학사정 정책을 도입했다. 그리고 주관적 학생선발에 대한 교수들의 항의를 막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여 학생선발에서 교수의 영향력을 배제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후견 아래서 근대국가를 건설하였고 또 미국유학파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가 걸핏하면 미국을 전범으로 삼아 이루어진다. 미국만 바라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미국에 대한 이해도 일방적이고 편의주의적인 경우가 많다. 이제 한 단계 성숙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종일 KDI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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