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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비리 재단의 복귀와 등록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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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21 18:55 조회19,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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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상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비리재단을 비호하는 교육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이 학생들을 경찰이 끌어낼 당시, 교정에서는 교수·학생·직원·동문 등 모든 구성원들이 농성중이었다. 오랜 단식투쟁으로 탈진하여 쓰러지는 학생과 교수가 속출하였다. 수년을 끌었던 이 참혹한 사학분규를 치른 끝에, 전횡을 휘두르던 옛 재단이 물러나고 관선이사가 파견됨으로써 대학은 비로소 회생의 과정을 밟게 된다. 필자가 봉직하는 대학에서 불과 9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올해 봄 다시 대학은 크게 술렁거렸다. 학생총회에서 학생 대표들이 삭발식을 거행한 것이다. 여학생들의 긴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자 지켜보던 학생들은 오열하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지난해부터 ‘정상화’를 내세워 악명 높던 옛 재단을 차례로 복귀시키던 교육부 산하의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우리 대학을 다음 희생물 중의 하나로 삼았기 때문이다. 환영받아야 할 ‘정상화’가 오히려 대학을 동요시키고 분노하게 하고 있다. 비유컨대 횡포를 일삼던 골목대장을 동네 아이들이 힘을 합쳐 가까스로 몰아내고 골목의 평화를 찾았더니, 싸움을 조정한다는 기관이 나서서 이제 조용하니까 다시 그 골목대장을 불러들이는 것이 ‘정상화’라는 꼴이니 누군들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지 않겠는가?

 

이 문제는 해당 대학의 고통만이 아니라 우리 대학교육 전반의 현안이나 위기와 구조적으로 맞물려 있다. 현재 사회적·정치적 의제가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문제도 그렇다. 등록금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되려면 사학 자체의 노력도 필요하고 정부의 공적기금이 대학에 더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학의 운영이 투명하고 민주화되어 있지 않으면 사학 내부의 노력도 불가능하고 오히려 국민세금으로 이루어진 지원금부터 이른바 족벌사학의 쌈짓돈이 되어버리고 만다.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 사학의 공공성을 더욱 높이는 과제와 결합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금은 한나라당조차 등록금을 줄이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정부는 사학운영이 투명해져야 한다며 대규모 감사까지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도한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러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비리를 저지르고 쫓겨났던 옛 재단들을 복귀시키겠다는 시대착오적 기관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다. 이들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사학에는 주인이 있으니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상화라는 것이다. 재정비리를 저질렀든 대학운영을 마구잡이로 했든 파렴치범이나 현행범만 아니면 대학운영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졸속 4대강 공사 못지않은, 아니, 학생과 교수들의 교육현장을 초토로 만들기 때문에 더 위험하고 심각한 밀어붙이기다. 심지어 이들은 현장 방문을 한번도 하지 않고 탁상공론만으로, 거의 등록금과 정부지원으로 유지되는 대학을 주인한테, 주인이 아니면 그 주인의 아들한테, 아들이 없으면 조카한테, 며느리한테 돌려주는 것이 정상화라고 강변하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이런 행태를 용납해야 하는가?

 

대학을 사유물로 여기는 자들이 사학법인의 이사진으로 있는 한 정부의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결과를 낳을 것이며, 등록금 반값의 의미도 크게 퇴색할 것이다. 현재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오는 23일 회의에서 다시 대구대·덕성여대·동덕여대 등의 옛 재단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기구의 활동을 묵과한다면 이는 야당은 물론 등록금 반값 추진을 내세운 집권여당이 얼마나 표리부동한지, 사학비리를 근절하겠다는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말해주는 징표가 될 것이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한겨레. 201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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