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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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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16 13:30 조회19,7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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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론사 간부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북한의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찬반 의견이 오가던 중, 제가 북한 정권이 아무리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은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자, 이른바 보수언론의 간부가 느닷없이 “천안함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믿는지 안 믿는지부터 먼저 답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분이 그 질문의 의미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않으면 친북좌파이고, 친북좌파이니 북한 동포에 대한 지원을 운운하는 게 아니냐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모든 사안에 합리적 의심을 갖고 접근해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기자로서 수십년을 살아온 분이, 발표 당시 국민의 절반 정도밖에 설득하지 못한 조사결과를 믿느냐 안 믿느냐를 근거로 삼아 사상검증을 하겠다고 나서니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원활한 소통을 책임져야 할 언론이 자신과 의견이 조금만 달라도 이렇게 네 색깔을밝히라고 다그친다면 우리 사회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공론 형성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불편한 느낌을 접고 합리적 소통을 위한 충정으로 평화와 공생의 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그것이 한반도 북쪽의 동포는 물론 남쪽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11년 전 오늘 우리 민족끼리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6·15선언을 이끌어내고 대북 포용정책을 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지금의 남북관계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끼친 영향만 비교해봐도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은 실패했다며 힘의 우위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면서 자멸을 기다리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정책의 기조로 삼은 것은 익히 알려진 일입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북한의 자멸을 가져오기는커녕 역효과만 낳았습니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라늄 프로그램까지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더욱 멀어졌고, 미국의 정책목표인 핵확산 저지에도 차질을 빚게 됐으며, 중국과의 관계는 악화됐고, 남북간 전쟁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습니다.

 

단적인 예가 2002년 제2연평해전 이후 7년여간 평화가 유지된 서해에서 지난해에 잇따라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입니다. 남북이 대결이 아닌 평화를 추구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 남북 양쪽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화력을 이 지역에 집중배치해 서해는 더욱 위험한 바다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북한은 최근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비밀접촉 과정을 공개하고, 남쪽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녹취록까지 공개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관례나 앞으로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북쪽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북쪽과 그 정도로도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어설프게 일을 처리한 남쪽의 무능력은 한심의 극치입니다. 오죽하면 젊은이들이 ‘이명박 정부는 연애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정부’라고 비아냥거리겠습니까?

 

물론 북한에 대한 비판 거리는 무수히 많습니다. 수십년간 자국민을 굶주림에 내몰면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입니다. 하지만 중국 예비역 장성인 판젠창의 지적대로 북한 핵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적대적 대치관계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이 적대적 대치관계를 해소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남북 모두가 화해와 협력을 통해 냉전의 잔재인 적대적 대치관계를 해소하자고 합의했던 6·15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까닭입니다.

 

그러려면 북한은 폭로 따위로 위협해 대화의 문을 닫아걸어서는 안 되고, 남쪽 역시 파탄 난 ‘전략적 인내’ 정책에 매달려 허송세월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라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면서 최소한 대화의 접점이라도 찾으려는 노력을 재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는 평화와 통일에 한걸음 다가가는 길입니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1.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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