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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힘내요, 일본!’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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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28 15:32 조회26,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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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요, 일본! (좌로부터 중앙일보, 한겨레, 네이버 출처)

  재난이란 얼마나 실존적인가! 3월 11일(금) 오후 2시 46분 센다이(仙台)시 앞바다를 진앙으로 한 규모 9.0의 대진재(大震災)로 일본 토오후꾸(東北)지방, 그중에서도 태평양 연안의 이와떼현(岩手縣), 미야기현(宮城縣), 그리고 후꾸시마현(福島縣)이 초토화(焦土化)되었다. 말이 9.0이지, 1995년 1월을 강타한 한신(阪神)대지진이 7.2였음을 상기할 때, 이번 지진 앞에서는 말길마저 끊어진다. 지진의 여파로 원전이 훼손되어 그 위협이 토오후꾸는 물론 칸또오(關東)지방에 두루 미쳐 이바라끼(茨城), 사이따마(埼玉), 치바(千葉)을 돌아 수도 토오꾜오(東京)까지 아우르는 형국이니 국외자의 눈길마저 얼어붙는다. 일상의 평화를, 사실은 약간의 불화조차도 그 평화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거니와, 단숨에 파괴한 이런 천재지변은 예기치 못한 사태들을 불러오기 마련이지만, 국경이 시나브로 흐릿해지는 기적 또한 그중에서도 눈에 띠는 일일 것이다. 전전에는 그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로서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굴종했고, 전후에는 근본적 반성을 유예한 그 후계국가와 크고 작은 갈등에 휘말리던 한국과 북한, 심지어 중국조차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 일본에 대한 묵은 감정을 내려놓고 일본 시민들을 응원한다. 대진재에 관한 나쁜 추억을 지닌 한국 시민들의 적극적인 대응은, 일본도 놀라고 한국 스스로는 더욱 놀라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잠깐 칸또오(關東)대진재 때를 상기하자. 1923년 9월 1일(토) 오전 11시 58분, 사가미만(相模湾)을 진앙으로 한 규모 7.9의 지진이 토오꾜오를 비롯하여 카나가와(神奈川), 시즈오까(静岡), 야마나시(山梨), 치바, 사이따마, 이바라끼를 엄습하여 사망 10만여, 행방불명 4만여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끼쳤다. 더구나 토오꾜오에서는 대화재가 발생하여 9월 3일 새벽까지 번지는 바람에 공포는 더욱 확산되었다. 무엇보다 수도가 강타당한 두려움에 일본정부가 진재 다음날 선포한 계엄령까지 겹치면서 우리로서는 잊을 수 없는 학살사건이 발생하였으니, 불과 10여일 만에 7천명에 가까운 재일 조선인이 체제위협자로 간주되어 자경단(自警團) 등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일시적 공황 상태일망정 일본 민간인들의 주도로 자행된 이 사건은, 진재의 혼란을 빙자하여 일본 헌병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아나키스트 오오스기 사까에(大杉榮)의 죽음과 함께, ‘타이쇼오(大正)데모크라시’의 후퇴를 이미 예고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번 대진재 또한 일본사회에 작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터이다. 혹자는, 폐허에서 걸어나온 ‘모던일본’이 파시즘으로 진군한 1923년의 칸또오대진재를 떠올리며, 또 혹자는 한신대진재 두달 뒤 출근으로 붐비는 토오꾜오 지하철에 독가스를 뿌려 12명이 사망하고 5천여명이 부상한 옴진리교의 망령에 떨며, 불길한 예감을 고백하기도 한다. 세상이 밝아져서 이젠 파시즘의 부활은 용납되기 어려울 듯하지만, 후자의 경우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멀쩡한 사람들이 종말론에 빠져 평범한 시민들을 태연히 살해한 옴진리교 사건만큼 일본사회의 불온한 내면을 드러낸 바는 찾기 어려운데, 이게 꼭 일본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기독교계에도 극단론적 경향이 증가일로에 있다는 풍문이고 보면, 아시아서구주의의 한 시대가 종언을 향해 급속히 달려가는 미묘한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던 것이다. 원자력 안전기술 세계 최고를 자랑한 일본이 바로 그 때문에 깊은 공포에 휩싸인 오늘의 상황은 근본적 변환을 사유할 정신개벽의 때가 왔음을 고지한다. 일찍이 타골은 “자연법칙을 통달한 서양의 과학 덕분에 인류는 물질의 어두운 지하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바로 그 때문에 서양의 집단지식이 끼칠 파괴성에 높은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일본은 서양을 배워 어떤 데서는 외려 서양보다 앞서나갔다. 이 학습효과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이 앞다퉈 서구주의의 우등생 일본을 본받았다. 이제 동아시아가 세계의 변방에서 막 탈각하는가 싶더니, 그 핵심에서 문제가 폭발했다. 서구주의를 바로 폐기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현재의 상황을 찬찬히 따져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되, 더 근본적 차원을 심사숙고하는, 다시 말하면 개량과 개벽을 함께 사유할 바로 그때가 아닐 수 없다. ‘힘내라, 일본!’은 따라서 일본의 안전과 복구를 기원하는 간절한 응원인 동시에, 서양의 전위로서 아시아를 타자화하는 일본이 아니라 아시아와 함께 새 세상을 꿈꾸는 새 일본의 탄생을 촉구하는 큰 격려일 테다. 대재앙 앞에 동북아시아가 모처럼 분쟁을 접은 이 소중한 시간 속에서 세계형성의 새로운 원리에 대한 상호학습과 협동적 실천이 익어갈 수 있다면 일본의 복이요 아시아의 천복이요 온세상의 만복일 것이다. “간바레, 니혼!”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통신. 201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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