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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독일 통일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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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2-28 09:18 조회20,4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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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베를린의 테겔공항을 이륙한 루프트한자 여객기는 오래지 않아 중부의 울창한 삼림지역을 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봄 나뭇가지에 움이 틀 무렵 독일에 왔는데 다시 움이 트는 것을 보고 떠나는 참이니 정확히 일년 사계절을 이곳에서 지낸 것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데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별로 없었지만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하중 때문에 두가지만큼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3제국 나치의 과거, 그리고 독일분단과 통일이 그것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독일 통합에 대한 인상기는 겉핥기로라도 일단 정리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필자의 개인적인 관찰을 중심으로 그간 느꼈던 바를 솔직하게 말해 보자.

 

첫째, 통독 과정을 미시적으로 보면 예기치 않았던 돌발요소와 우연성이 큰 몫을 했다. 이런 점은 역사적·구조적 조건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하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구조적인 조건만큼이나 행위 당사자의 의지도 무시할 수 없으며, 특정한 상황적 계기를 맞아 그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거기에 맞춰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더 나아가, 거시적으로 보면, 우연성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더라도 통일 과정이 평화적으로 진행된 데에는 과거 동방정책의 덕이 컸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브란트가 추구했던 바와 같이 조건 없는 긴장완화 효과를 오래 축적해 놓은 바탕 위에서, 만일 급변상황이 발생할 경우 통찰력을 발휘하는 것, 두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둘째, 동독과 동유럽권이 붕괴했다는 말은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와의 외형적인 경쟁에서 패배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의 변화를 뜻한다. 본디 동독 내부의 변혁운동이 지향했던 바이자 서독의 좌파 진영이 강하게 지지했던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회복이었다. 논리적으로는 이 주장이 옳았던 것 같다. 그러나 동독 자체의 내부개혁 노선은 얼마 못 가서 동서독 통일을 원하는 대중노선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즉, 좋은 의미의 사회주의를 하자는 주장조차,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서독체제 내로 편입되자는 요구 앞에서 맥을 출 수 없었던 것이다. 설령 동독이 분단국가가 아니어서 통일 요구가 없었다 하더라도 여타 동유럽권 국가들처럼 시장의 힘 앞에 쉽게 굴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십여년 후 경제지구화의 폐해가 만천하에 드러난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민주사회주의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셋째, 통독을 지켜봤던 어떤 한인 2세 독일시민은, 통일이 되어 독일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와 같은 소수자가 갑자기 소외되고 주변화되는 것을 경험했노라고 필자에게 고백하였다. 똑같은 현상이라도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는 이처럼 큰 인식의 격차가 나올 수 있다. 통일이 또다른 배타적인 현실을 창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통일이 보편적 의미를 부여받으려면 ‘우리 민족끼리’를 넘어선 중층적이고 포괄적인 복수의 ‘통일들’이 필요하다.

 

넷째, 통일 후 독일에서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마음의 장벽이 들어섰다는 말이 많다. 실제로 동독 출신들은 2등 시민으로서의 깊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물질적 격차에서 오는 열등감도 크지만, 옛동독의 모든 점들이 부정당하는 현실 앞에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승리했다는 자만심에 빠져 동독의 자취를 무조건 지워버렸던 서독은 이제야 그 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독 출신으로 <뉴욕 타임스>에서 일하는 카트린 벤홀트 기자는 동독의 괜찮았던 사회정책조차 통일 후 깡그리 무시되었다고 지적한다. 보편적 유아보육 시설 덕에 동독 여성들은 더 일찍 결혼하고 더 많은 아이를 낳았으며 더 많이 취업할 수 있었다. 지금도 유아보육 제도는 옛동독 지역이 낫다. 전공이 다른 의사들이 함께 모여 진료하던 동독의 폴리클리닉 제도 역시 서독의 의료계가 재발견하고 있는 제도다. 최근 핀란드의 교육제도를 시찰하러 갔던 독일 교육당국은 핀란드가 애초 동독의 교육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독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우르밀라 고엘의 말을 들어보자. “서독지역에서 사회화된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독의 역사를 귀감으로 삼으려는 자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분단 시절 인권이 침해당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동독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무차별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통일비용과 그 후의 수많은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 통일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제가 많았지만 역시 통일하기를 잘했다, 그 외의 대안은 없었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통일 이후 태어난 신세대일수록 분단이 빚은 정신적·심리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운 경향이 있다.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정상화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는 말이다.

 

베를린이라는 특수한 역사의 현장에서 저 멀리 동아시아를 관찰했을 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조건의 구조적 모순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앞으로 일종의 ‘통일 사회학’이 중요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단순히 통일을 둘러싼 정치적·기술적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체체간 통합을 사회과학적으로 적극적으로 이론화하자는 합의가 형성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두 체제를 별개로 두되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쪽으로 발전시키는 ‘분립동화형’, 두 체제를 넘어 새 체제를 모색하는 ‘제3의 길형’, 두 체제의 좋은 면들을 결합하는 ‘혁신통합형’, 한 체제가 다른 쪽을 집어삼키는 ‘흡수통합형’, 이런 여러 모델들을 가능한 경우의 수로 상정하고 한반도 통합 문제에 여러 분과학문들이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한다. 이런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비행기가 어느새 황해 상공에 진입했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그리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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