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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2.28사건과 동아시아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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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2-28 09:12 조회20,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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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국가 폭력의 상처가 깊은 곳이다. 2월 28일은 대만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947년 이 날의 시위는 국민당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이어졌다. 학살과 약탈 끝에 희생된 사람이 3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유사한 국가 폭력이 동아시아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다.

돌이켜보면 1946∼47년은 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인가 평화인가의 선택에 직면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통해 동아시아는 새로운 전쟁과 대립의 길로 들어섰다.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전쟁으로 치달았으며, 한반도와 일본에도 국가주의가 내면화되었다.

중국과 한반도 전쟁의 결과

중국 대륙에서 내전을 시작한 것은 장제스(蔣介石)였다. 1945년 10월 국민당과 공산당은 미국의 중재로 교섭했다. 1946년 1월에는 모든 당파가 참여하는 정치협상회의를 열어 연합정부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1946년 6월 국민당은 무력통일을 위해 공산당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국민당의 도발은 소련의 만주 점령에 대한 초조감에 따른 것이었다. 만주는 19세기 이래 중국 산업의 심장부가 되었고, 일본의 군수물자와 공업시설이 집중된 곳이었다. 국민당은 소련이 만주를 접수함으로써 공산당의 군사적 거점이 될 것을 우려했다.

처음에는 국민당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2·28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국민당의 전성기였다. 국민당은 만주와 산둥은 물론 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국민당은 자멸의 길을 걷는다. 지방토호세력과 결탁한 장제스의 독재 체제는 조세 수입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전선의 확대로 군비 지출이 늘어나자 엄청난 인플레가 발생했다. 1945년 9월부터 1948년 7월 사이에 상하이의 도매 물가는 1,000만 배 이상 올랐다.

마오쩌뚱(毛澤東)도 전쟁을 선택했다. 그의 고민은 미국의 출병 여부였다. 결국은 소련에 발목을 잡힌 미국이 중국 내전에 참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공산당은 무력통일을 결심했고 1947년 6월 전면 반격을 개시해 황허를 넘어 진격했다. 1948년 후반에는 만주와 화베이에서 승리했고, 1949년 봄에는 베이징 난징 상하이 등을 장악했다. 1949년 말 대만으로 도주한 국민당은 추격하는 인민해방군을 진먼따오(金門島)에서 저지했다. 이후 국민당은 대만에서 '일당국가' 체제를 구축했다.

중국 대륙의 내전은 한반도로 비화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군사적 승리에 고무된 북한은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전면전을 일으켰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서와 달리 미국이 신속하게 전쟁에 개입했다. 체제의 안정을 자신하지 못하던 중국도 한반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한반도에서는 전쟁의 결과 국가와 군대는 극도로 비대화되었다. 중국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었으며 자본주의 세계와 정면 대결하는 고립 구도에 빠졌다. 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채택한 중공업우선 발전전략은 중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970년대 초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립 무원'의 콤플렉스 속에서 국내의 동란을 반복해야 했다.

국가 주도 발전모델의 두 얼굴

중국과 한반도의 전쟁은 일본과 미국을 동아시아의 축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미일 안보조약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동아시아에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는 침략 전쟁을 주도한 세력이 복귀했으며 재군비가 시작되었다. 열전과 냉전의 대결구도 속에서 과거 괴뢰국가 만주국의 경제 실험이 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의 성장모델로 승계되었다.

동아시아 모델은 국가가 주도한 자본주의 발전모델이다. 그 이면에서는 전쟁을 통해 형성된 국가주의도 함께 성장했다. 국가는 발전과 억압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동아시아 민중들은 국가를 견제하는 자유주의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원한다면, 국가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한국일보. 2011.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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