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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복지국가, 경제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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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2-28 09:07 조회19,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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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적 정당들은 물론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의 일각에서도 보편주의 복지국가 구상들이 나오고 있다. 복지국가를 모든 시민들이 중산층 이상의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가라고 다소 거칠게 정의할 때, 거기서의 복지체계는 보편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거의 모든 종류의 복지 누림을 시민의 보편적 사회권으로 인정하고 보장하는 국가야말로 진정한 복지국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복지국가는 그에 부합하는 성격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로소 제대로 발전해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흔히들 자본주의의 유형을 ‘조정시장경제’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나누곤 하는데, 그 경우 복지국가는 후자가 아닌 전자와 친화성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우리에겐 특히 복지국가가 자유시장체제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현실과 그 까닭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자유시장경제의 압축판인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살면서 복지국가를 앙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는 상충 논리

우선 복지국가는 자유시장체제와 그 가치 지향부터 다르다. 자유시장체제에서는 각 개인의 시장에서의 자유 혹은 경제적 자유가 최상의 가치로 여겨진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의 증진을 위해 국가나 사회가 이 시장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여기선 복지도 그저 상품일 뿐이다. 좋은 복지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값을 주고 시장에서 구입할 일이다. (능력이나 기여 정도에 관계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는 최저생활수준의 보장 정도이면 족하다. 둘째, 복지국가의 사회제도들은 자유시장체제의 경제제도들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자유시장경제를 구성하는 핵심 제도들은 모두가 연대나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고, 형평성이나 공정성보다는 효율성을 제고케 하며, 분배나 통합보다는 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체계, 주주가치 중심의 기업지배구조, 단기 고용체계, 파편화된 분쟁적 노사관계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성격의 경제제도들이 서로 맞물려 있는 곳에서 연대, 형평성, 분배 등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보편주의 복지제도들이 제대로 작동될 리는 만무하다.

셋째, 상기한 가치의 충돌이나 제도 간의 부조화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하히 자유시장체제에서 복지국가의 건설이 추진된다 할지라도 그 소요 비용의 과도함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기 십상이다. 무규제나 탈규제, 민영화, 시장 개방, 작은 정부 등을 지향하며 경쟁의 자유를 유난히 강조하는 자본주의 체제일수록 시장에서의 1차 분배 과정에서 강자와 약자 간의 소득격차는 크게 벌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격차가 자본가와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사이에서 심화돼 갈수록 2차 분배에 불과한 복지로는 그 격차를 메우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된다. 자유시장체제에서 복지국가의 창설이나 유지가 어려운 까닭이다. 밑 빠진 독을 채우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을 얼마나 오랫동안 퍼부어야 하는가.

지속성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나름의 조정시장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 자유 못지않게 사회적 자유를 중시한다. 따라서 거기서의 시장은 사회적 조정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시장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작동케 하기 위해서는 비시장적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복지체계는 그러한 조정시장경제의 일환일 뿐이다.

조정시장 전략과 함께 가야

한국에서의 복지국가 구상도 조정시장경제 전략과 함께 가야 한다. 즉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우리식의 조정시장체제로 이행해갈 수 있는 경제전략과 한 짝을 이루는 복지구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119조 2항은 이미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시장 조정과 개입을 명령하고 있다. 누구든 이 명령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조정시장경제 발전방안을 내놓아야한다. 한국 복지국가의 건설은 그러한 방안과 함께 추진될 때만 실현가능하며 지속가능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1.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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