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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조계사 앞의 성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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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1-02 22:14 조회18,2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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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겨울이다. 30년 만의 강추위 속에 성탄절마저 얼어붙었다. 철새와 함께 날아온 조류인플루엔자가 얼핏 비치더니 어느새 구제역이 창궐한다. 4대강 사업의 굉음이 지상은 물론이고 하늘의 평화까지 교란했는가? 자연에 가한 인간의 횡포가 부메랑처럼 복수하는 자연으로 되돌아오는 이 무서운 천형(天刑)의 시대에 혹 방자함은 없었는지 삼가고 또 삼갈 때이건만, 우리 집권층은 어쩌면 그리도 두려움을 모르는지 차라리 딱하기 그지없다.

 

연평도 사태야말로 잔인했다. 남의 사격훈련에 북이 기습적으로 무차별 포격을 가한 연평도 사태로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이 죽고 다쳤다. 동족의 생명조차 가벼이 여기는 북의 소행에 기가 막히지만, 북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한국군이 그를 벌충하려는 듯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사격훈련을 개시한 일 또한 적절하다 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북의 위협이 말로만 그친 게 천만다행이거니와, 그럼에도 ‘우릴 살게 해줘야지...’하며 말끝을 흐리는 연평주민의 중얼거림이 긴 여운을 남긴다.

 

말로만 듣던 치킨게임(chicken game)을 실감케 한 이 어리석은 경기로부터 벗어날 길은 어디에 있을까? 1950년대에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치킨게임이란 두 명의 참가자가 도로의 양끝에서 자신의 차를 몰고 서로 정면을 향해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를 일컫는단다. 진 자가 치킨(닭=겁쟁이)이다. 마주보고 달리는 두 자동차의 충돌을 막으려면 둘 중 하나는 자동차를 옆으로 빼야한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제 남쪽이 형이다. 형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닭 소리를 듣는달지라도 이 게임에서 동생에게 져주어도 욕할 사람 아무도 없다. 이런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그저 소용(小勇)에 지나지 않는다. 한번 노해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대용(大勇)이라고 맹자(孟子)가 말했던가? 더구나 연평도 사태는 게임이 아니다. 한반도 남북 주민 전체의 생명이 걸린 민족의 사활 문제인 것이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소용이 아니라 대용을 귀히 여겨야 하는 법인데, 남북문제를 기껏 치킨게임처럼 다루어서야 이 험난한 국제정세를 지혜롭게 타고 넘어 어찌 통일사업을 제대로 진척시킬 것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남이 치킨이고 두번째는 북이 치킨이었다. 치킨게임인 듯 사실은 치킨게임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북 사이에,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적 환경에 전면전으로 갈 위험을 억제할 기제가 미묘하게 작동한 것이다. 고맙다.

 

물론 연평도 사태는 아직도 불안하다. 이를 근치할 방안은 사실 간단하다. 다시 햇볕정책으로 복귀하면 된다. 그대로 하기 민망하면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수정해서 실시하라. 그 동안의 대복압박정책이 효과가 있었다면 더 할 말이 없겠지만, 핵은 핵대로 세습은 세습대로 무력공격은 공격대로,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는 북의 현실을 보건대 압박은 실패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씀처럼 서둘지 말고 화해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 변화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다. 햇볕정책이란 말 자체를 북이 기피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정책의 목적은 북의 변화다. 물론 그와 함께 남도 변할 것이다. 아니 변해야 한다. 얼마전 택시기사로부터 연평도 사태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군대 간 아들 때문에 전쟁이 나서는 안되겠는데, 한편 전쟁이 났으면 하고 바라는 심리도 서민들 사이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전쟁 나길 기다리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지만, 양극화가 이만큼 사람들을 박탈감에 몰아넣고 있다는 점을 위정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그/그녀의 재능과 노력 여하에 따라 그/그녀의 삶의 질이 결정될 수 있다는 우리 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다시 살려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사회를 치료하고 북을 변화로 이끌 햇볕정책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2010년 겨울은 잔인하지 않다. 연평도 사태가 햇볕정책을 다시 보게 만들었듯이, 구제역 파동은 곳곳에서 연대의 감각을 소생시킨다. 인터넷에 떠도는 파주 축산농 유동일씨의 「살처분일지」가 마음을 울린다. 자식처럼 기르던 소들을 죽음에 내줘야 하는 농민들과, 직접 살처분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함께 통곡하는 우애를 생생하게 중계하는 이 글은 2010년 최고의 문학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한국불교사상 처음으로 조계사 일주문에 등(燈) 모양의 성탄목 3 그루가 12월 20일 불을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 나란히 점등식을 치른 조계종 총무원장은 “예수의 삶을 본받아 남북갈등으로 인한 불안, 정치권의 혼란으로 인한 상심, 평화와 관용을 위협하는 아집과 독선을 이겨내”자는 축하메시지를 발표했다. 아름답다. 이 마음으로 호랑이해를 보내고 토끼해를 맞이하자. 용궁에서 죽음에 몰렸다 탈출한 영리한 토끼처럼 호랑이해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는 그런 새해를 위해 건배!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통신. 201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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