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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국가주의를 넘어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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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1-22 09:28 조회18,2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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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던 시장주의가 멈칫하면서 국가주의가 강해지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 위기다. 지나친 시장주의와 금융팽창을 조절하지 못한 결과는 침체에 대한 공포로 나타났다. 이에 각국 정부는 다투어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국가복지 증대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주의의 대안을 찾는다고 국가주의로 몰려갈 일은 아니다.

다양한 공동체와 시민국가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포럼'에서 국가주의를 심각하게 비판했다. 막스 베버는 "국가란 특정한 영토 내에서의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는 공동체"라고 정의했지만, 국가가 독점하는 폭력이 정당한지 의심하지 않으면 국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에는 '주권국가'가 최고의 공동체였으나 21세기에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주권국가는 글로벌화로 인해 상대화되고 있다. 국가는 앞으로도 존속하겠지만, 국가를 뛰어넘는 인류나 광역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국가 안의 다양한 시민공동체 종족공동체 지역공동체 등과의 관계에서 상대화될 수밖에 없다.

사카모토 교수는 '공동체'를 상대화해서 열린 '연대'가 다층적으로 중첩된 공생사회를 만드는 일을 21세기의 과제로 제시했다. 주권국가가 충성심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공동체가 겹쳐진 '시민국가'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다양한 공동체는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공동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조직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는 내부조직의 일종이다. 내부조직은 반복되는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개인들이 맺는 관계를 장기화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내부조직은 가족이나 동료 조직이다. 이는 집단적이고 협동적 활동을 하거나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자산이나 정보를 분할할 수 없는 경우에 유용하고, 위험을 부담하려는 태도, 집단의 이익 추구에 장점이 있다.

소규모 공동체가 신뢰와 협력의 구축에 강점을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시장 기업 국가에 대항해 살아남기는 매우 어렵다. 구성원 모두가 관계를 맺고 정보를 나누는 공동체 관계는 조직적 위계질서를 갖춘 경우에 비해 정보처리 능력이 떨어진다. 또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 발생하는 무임승차 문제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소규모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개인이나 집단 단위의 계약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나 지역자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네트워크란 독립적인 실체들이 순환적으로 계약적 연계를 맺는 세트를 의미한다. 네트워크에서는 각 단위들이 독립성을 유지한다. 따라서 조직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지, 네트워크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조직의 안정성과 조정 문제에 보다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틀을 제도화하고 내부적으로는 통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계약을 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즉, 법적 지위를 지닌 공식적 통치체가 필요하다. 기업이나 국가가 이러한 위계적 조직을 대표한다. 그런데 지역 자치체는 지역 주민과의 관계가 비교적 직접적이고 주민이 조직의 통제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가 높은 조직 형식이다. 자치체는 국가에 비해 공동체성을 실현하는 데에 우위에 있다.

지역자치와 네트워크 중심

그런데 지역도 역시 생존력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결국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보다 광역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네트워크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다중심 집적지'와 '광역지역'이다. 단일한 지역이 아니라 다수의 인근 지역 사이의 기능적 연계를 수반하는 지역 네트워크다.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가 안에서, 국가를 넘어서려면 다양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한 공동체의 핵심적인 조직 원리는 지역자치와 네트워크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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