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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일본은 복지국가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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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7-13 13:51 조회17,3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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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복지국가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이 등장한 이후이다. 민주당이 그해 8월의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총 의석의 64%를 차지한 것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자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단독 다수당이 된 것은 소위 ‘55년 체제’의 출범 이후 최초로 즉 54년 만에 일어난 이변이었다. 신임 수상인 하토아먀 유키오는 선거전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과 민주당이 취할 정책기조를 미리 밝힘으로써 일본을 어떻게 변화시켜갈지를 이미 예고한 바 있다. 관심을 끈 대목을 대내 정책에 국한하여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자민당의 일본은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만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매몰돼있었다.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 내수중심의 국민경제 발전과 복지 및 사회안전망의 충실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 사회를 건설해야한다. 이는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 국민은 그러한 하토야마의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일본 국민의 열렬한 민주당 지지 배경에는 무엇보다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실정이 있었다. 일본 사회는 1990년대 초반 이후, 특히 고이즈미 정권(2001-2006) 하에서 급격히 진행된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다. 분배와 평등의 가치가 지켜지던 과거의 ‘총중류사회’는 어느새 시장의 자유만이 존중되는 ‘격차사회’로 변한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더니 2000년대 말에는 결국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34%를 넘고 실업률 역시 사상 최악인 5.7%에 이를 정도가 됐다. 그러나 사회보장의 제공은 양과 질 모두 더 나빠졌을지언정 결코 개선되지 않았다. 당연히 빈부격차는 심화됐다. 소수의 강자와 다수의 약자 간의 갈등 상황은 이제 사회통합의 위기를 우려케 할 정도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화를 추진해온 자민당에 비난이 집중된 것은 사필귀정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출범한 하토야마 정부는 당장의 정책과제로는 아동수당 창설, 공립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 의료보험 일원화, 연금수급자의 세부담 경감, 노동자 파견법 전면 재검토 등과 같은 주요 복지정책을 내놓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로 발전시켜갈 새로운 성장-분배 정책체계의 수립 및 구체화 작업에 착수했다. 최근 간 나오토 구상으로 알려진 소위 ‘제3 성장의 길’이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제3성장의 길은 하토야마 정부의 부총리 겸 국가전략상이었던 간 나오토의 주도로 그 기초가 마련된 성장전략이자 사회경제정책 모델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2009년 12월에 공표된 ‘성장전략 기본지침’에서 공공사업을 통해 성장을 추구한 (다나카 카쿠에이 등) 과거 자민당 정권의 정책기조를 '제1의 길,' 그리고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 성장전략을 '제2의 길'로 규정하고, 그 둘과는 전혀 달리 지구온난화, 소자․고령화, 격차사회 문제 등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통해 새로운 고용과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자신들의 전략을 '제3의 길'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길은 지난 6월 8일 간이 하토야마의 후임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이전보다 더 발전된 내용으로 그리고 이제는 단순한 지침이 아닌 일본의 공식 경제 및 사회정책 기조로서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3성장의 길은 일종의 ‘복지 성장론’이라 할 수 있다. 복지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추진된다. 하나는 사회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직접 사회보장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보건의료, 사회복지, 환경 등의 분야에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그것들을 신성장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두 경로 모두 복지 및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이어진다. 그 경우 일본의 내수는 확대된다. 고소득 계층과 달리 저소득 계층의 가처분소득과 소비는 사회안전망의 강화와 복지 증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늘어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로에서는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산업의 성격상 수많은 사람들의 고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또 다른 내수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은 물론이다. 이렇게 하여 안정적인 내수와 고용이 창출되면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이 제3성장의 길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간 수상은 특히 사회보장-고용창출-경제성장의 연계에 성공한 스웨덴 사례를 지적하며 자신의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복지국가 일본은 이미 상당히 가까이에 와 있는 듯하다. 모델과 경로가 수립돼있고, 집권세력이 그것을 구현할 의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본이 제3성장의 길을 순조롭게 걸어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일차적 문제는 재원조달이다. 획기적인 복지확충 비용을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간 정부는 현행 5%인 소비세를 10%로 올리는 등 증세를 시도하려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증세만이 아니다. 일본이 복지국가로 가는 경로에는 그보다 더 복잡한 구조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앞으로 남은 5회의 연재를 통해 몇 가지 맥락에서 일본의 복지국가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서남포럼. 201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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