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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새로운 축구, 새로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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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7-05 07:42 조회17,3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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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8강에는 들지 못했다. 2002년의 4강 진입은 이변 또는 매직으로 치부되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웬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한국 축구의 색깔과 모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아쉬운 점은 많았다. 수비진이 상대를 놓치고 무너지는 모습이 나왔다. 실점은 쉽게 하는 반면 골을 얻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한국 팀 공격력의 핵심은 세트피스, 즉 프리킥과 코너킥 등 볼이 정지된 상태에서 전개되는 플레이였다. 연속적 움직임에서 이루어지는 득점은 적었다. 상대편 공격의 길목을 싹뚝 자르는 수비, 동료에게 툭 찔러주는 통쾌한 패스, 상대 수비를 제치고 공간을 열어 침착하게 때리는 슈팅이 아쉽다.

토털사커 혼합형 모델 유리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것이 기본기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기본기 요소를 결합하고 혼합하여 독특하고 견고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한국 축구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기는 드리블과 패스다. 드리블은 상대방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볼을 컨트롤하며 이동하는 것이다. 드리블은 1대1 대결인데, 속도와 상대 움직임에 대한 예측이 중요하다. 드리블의 본질은 상대편과의 경쟁이다. 패스는 볼을 보내는 움직임과 받는 움직임을 결합하는 것이다. 패스는 동료 사이의 관계를 본질적 요소로 한다.

축구의 기본기는 조직경제의 기본 요소와 흡사하다. 드리블과 슈팅은 개인 간의 1회적 대면인데, 이는 '시장적' 거래와 닮았다. 시장에서는 생산비용과 차별화의 우위를 장악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보통 골을 넣거나 막는 결정적 순간에는 공격수와 수비수가 정면으로 대결하게 된다.

그러나 골 문 앞에 오기까지 복잡한 연결 상황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개인기로 볼을 몰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다양한 패스에 의한 연결이 유용한 경우가 많다. 쭉쭉 치고 들어가는 단순한 돌파가 시원스럽지만, 패스를 통해 수비를 우회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패스는 동료 간에 맺는 조직관계로 약속을 필요로 한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일어난다. 단순한 계약에서 복잡한 계약으로 진전되며, 계약관계가 장기화하면서 '위계적ㆍ명령적' 거래를 본질로 하는 조직이 형성된다. 기업의 경우 기업 안에서는 위계적 거래를, 기업 사이에는 시장적 거래를 행한다.

축구의 전형적인 모델은 남미형과 유럽형이었다. 남미형은 선수 개인의 능력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 유럽형은 팀의 조직능력을 중시했다. 또 공간적으로 공격과 수비의 분담체제가 확연했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프로축구가 탄생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멀티플레이어들의 능력이 개발되고, 남미형 요소와 유럽형 요소가 '혼합'된다.

개인기와 조직력을 혼합한 토털사커 개념은 경제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화와 기술 혁명에 따라 경제 활동의 시간과 공간은 혁명적으로 압축되었다. 세계는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이제는 모델의 안정성과 견고함보다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과 유연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토털사커를 하는 데에는 혼합형 모델이 유리하다.

시장만능 극복하는 혁신 필요

브라질은 여전히 최고의 팀 중의 하나다. 하지만 1950~60년대만큼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현란한 드리블만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축구도 조직력만으로는 더 발전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점수와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기본기보다는 전술 훈련에 몰두한다. 팀을 지휘하는 감독이나 코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반칙이 너그럽게 용인되는 환경은 창조적 개인 경쟁을 어렵게 한다.

한국이 더 수준 높은 축구를 하려면 개인능력과 조직능력을 혼합한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경제모델에도 시장만능주의와 명령절대주의를 극복하는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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