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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교육자치시대의 협치모델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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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6-28 09:01 조회16,9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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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위터에선 이명박 대통령 등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투표 결과가 화제입니다. 학교나 자신 등 다른 조사항목에서는 좋다와 싫다가 반반 정도로 나온 반면 이 대통령 항목에선 ‘좋다’엔 두셋 정도 기표돼 있는데 ‘싫다’ 쪽은 빼곡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을 최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와 초등학생들의 만남에서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곽 당선자가 학교급식 상황을 살피러 강남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를 알아본 아이들이 에워쌌습니다. 아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일제고사 만드셨잖아요. 그런데 교육감 아저씨는 반대한다면서요. 저희도 반대해요”라고 말하며 일제고사를 보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아이들은 또 현장체험이나 수영을 많이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도 내놨습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초등학생들마저 시험의 감옥에 가둬,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이야기지요. 6·2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부여당과 수구언론 등 보수진영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마녀사냥식 공격을 퍼부으며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전교조 세상이 된다고 겁을 주었음에도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을 선택했습니다. 경쟁 위주의 이명박식 교육이 아닌 다른 대안도 검토해보자는 것이지요.

 

그 결과 전체 학생의 57%가 진보 교육감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자, 벌써부터 교육계 대충돌 우려설이 나돕니다. 진보 교육감들이 사사건건 정부의 교육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보수와 진보가 균분해서 교육을 책임지는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 교육의 병폐를 줄이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해주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한다면 말입니다. 사실 교육의 세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선 진보와 보수 사이에 이견이 없습니다. 이 정권의 교육정책을 주도해온 이주호 교과부 차관 역시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시선을 교육의 현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의 필요로 돌리는 순간 (진보와 보수 사이의) 대타협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역시 정부 관료의 획일적 통제와 간섭을 비판하고 “학교를 자유롭게, 학생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학생 개개인과 개별 학교의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목표 아래 추진된 정책 결과는 참담합니다. 수단과 목표의 착종 탓입니다. 자율화·다양화란 목표를 내걸고 획일적인 일제고사를 강제해 그 성적을 공개하고 그를 바탕으로 학교와 교원을 평가하겠다고 을러댈 순 없는 일입니다. 수업시수 선택의 자유를 주면 국어·영어·수학 시간만 늘어나고 자율학교를 만들면 입시명문고로 변질하는 일은 이런 착종의 귀결일 뿐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방치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는 한가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협치의 모델을 만들어 대결 대신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대타협의 전제는 아이들을 교육의 중심에 놓고 그들에게 참다운 배움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겁니다. 배움의 권리를 인권으로 인식할 때 우리 교육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움이 권리가 되면 학교와 국가는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을 제공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과과정이 유연해지고, 교과 편성을 둘러싼 교사의 이기주의도 발붙이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배우니 학습이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로운 학교, 즐거운 학생이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되는 거지요.

 

권태선/논설위원

(한겨레. 201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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