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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민심은 어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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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6-11 09:04 조회17,1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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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어뢰.” 눈을 사로잡는 표현이다.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 의원이 “민심의 어뢰가 다가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고 조선일보의 한 기사가 “민심의 어뢰”라는 표현을 제목에 사용했다.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가 오마이뉴스와 했던 인터뷰에서도 이 표현이 등장했다.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의 무서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민심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당은 당장 참담한 패배를 했고 다음에는 더 참담한 패배가 올 수 있다는 두려움, 야당은 이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에서 민심의 또 다른 냉정한 심판을 받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모든 여론조사가 여당의 압도적 승리를 예견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아무 말 없이 이를 완전히 뒤집는 선택을 한 것이 그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왜 민심을 외면했는지 반성 필요

그렇지만 민심을 어뢰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민심의 호된 심판을 받은 여당이 민심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원론적으로 민심을 어뢰와 같은 기습용 공격무기에 비유하는 것은 민심을 존중하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민심은 어뢰처럼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이 표현의 더 큰 문제는 현실에 대해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표출된 민심은 결코 어뢰처럼 몰래 온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선거 전의 여론조사가 유권자의 정서와 움직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정반대의 예측을 내놓았기 때문에 선거 결과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촛불시위 이후 여론조사의 예측과 다른 조짐들은 계속 있어왔다. 그 동안 치러진 재·보선의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민심은 여당의 독주에 대해 계속 경고를 보냈고, 야권에 대해서는 이러한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연합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민심이 어뢰처럼 다가온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물결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보기 어려운 것을 못 본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않은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왜 이를 외면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이제 민심이 명확히 드러난 이상 너도 나도 민심을 잘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논어에 ‘청기언이관기행(聽其言而觀其行·그의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은 이러한 냉정한 태도로 선거 이후 각 정당의 실천을 관찰하면서, 다음의 선택을 준비해갈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낙관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국민의 뜻 존중 행동으로 보여야

민심을 호도하는 데 앞장섰던 보수언론이 청와대와 여당의 소통부재를 꾸짖는 코미디가 연출되는 가운데, 민심을 정파 갈등에 동원할 도구 정도로 여기는 여권에 기대할 것은 크지 않다. 야권은 당장 선거 승리를 즐기고 있지만 더 험난한 과제가 앞에 놓여있다. 견제를 위한 선택이었지 수권세력으로서 신뢰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승리한 지역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가야 할 터인데, 그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야권이 신뢰받는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화려하고 추상적인 구상을 앞세우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데 노력해야 한다. 부패 척결과 주민 참여가 핵심 과제일 것이다. 둘째, 4대강 문제나 무상급식과 같이 국민 다수의 의사가 모아지고 있는 사안에 초점을 맞추어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 구세주를 자처할 필요는 없다. 자처한다고 해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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