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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결정적 증거' 이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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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5-24 10:32 조회17,7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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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이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작은 파편 정도가 아니라 어뢰 추진모터와 추진축, 프로펠러 등 어뢰 몸통을 찾아냈다. 게다가 어뢰가 북한제라는 것을 자백하는 듯한 '1번'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제시된 증거물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사건의 특성상 물증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그간의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직후에는 정부도 비교적 신중한 자세였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4월로 넘어오면서 북한 배후설이 적극 거론되었다. 마침내 합동조사단이 '결정적 증거'를 꺼내 놓기에 이르렀다.

남북·세계체제 새로 구축

''결정적 증거' 때문에 이제 천안함 사건은 기존 현상을 유지하는 '모호성'의 영역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남북관계는 물론 동아시아를 둘러싼 세계체제가 새롭게 구축되는 과정이 격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진보개혁 세력은 남한 내부를 압박하는 분단체제의 성격과 위력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북풍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안이하고 타성에 사로잡힌 것이다. 병사들의 희생에 격앙된 국민감정의 파도는 높고 거세다. 4대강, 세종시, MBC, 검찰 등과 관련한 현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는 노력은 분단체제의 파도에 힘을 잃고 있다.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군부의 팽창 여부, 리더십의 오작동 가능성, 중국의 영향력 강화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짐작이지만 시스템의 위험 요소와 변동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점진주의적 이행 모델의 전형으로 평가 받는 중국의 경우에도 변화는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측면이 있었다. 질서 있는 변화가 지연되고 있는 경우 무질서와 급속한 변동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변화 이전 시기에 대한 관리에도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역대 정부의 정책 모델은 모두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이 있었다. 서해상의 교전은 김대중 정부 시기인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에 이어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11월에 벌어졌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남한 내부에서는 응징과 복수를 주창하는 군사노선이 득세할 것이다. 이른 시기 안에 기존의 포용정책 모델과 강압정책 모델을 넘어선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발견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북한의 시스템 변동 시기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불바다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

정부와 보수세력은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간의 민주화 운동의 전통과 1987년 이후 확립된 민주주의 체제의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보수파 시민들 중에서도 증거가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걱정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수세력 내에서도 경쟁과 합리성이 작동하고 있으니, 현 정부 임기 내내 북풍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숨겨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노파심이지만 만의 하나라도 무리하게 맞춰진 조사가 있다면, 이는 보수세력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미진한 점은 신속히 보완·교정해야 한다.

조사 미진한 점 보완돼야

시급한 문제 중 첫째는 열상감지장치(TOD) 동영상이다. 천안함 침몰 순간의 동영상이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주장이 사실이어도 문제고 거짓이어도 문제다. 둘째는 사건 발발 시각 문제다. 당초 합참은 오후 9시 45분으로, 국방부는 9시 30분으로 발표했으나 나중에 지진파 감지 시점인 9시 22분으로 정리되었다. 이는 군이 정부와 국민에게 정직한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킨 발단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단순한 보고체계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초, 정부와 군에 대한 신뢰가 여기에 걸려 있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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