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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숨어 있는 손’은 실체를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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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15 19:30 조회18,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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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에 불법시위 관련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사건의 파장이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달 20일 작가회의 정기총회에 모인 회원들은 돈을 받지 말자는 최일남 당시 이사장의 발언에 적극 호응하며 예술위의 무례를 성토했고, 지원금에 의존해오던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의 발간 중단에 동의했다. 최근 예술위가 확인서 제출 요구를 철회했음에도 지면을 빼앗긴 이번 호 필자들이 지난 12일 예술위 앞에서 항의성 낭독회를 가진 바 있다.

이 사건에 한정해서 본다면 예술위는 양쪽에서 욕 먹는 모양이 됐다. 실상 확인서 발상의 주체는 예술위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 없이 예술위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그런 몰상식한 행정문건을 예술인단체에 보냈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급기관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이라면 예술위의 위상은 더욱 한심하다. 왜냐하면 예술위는 문화예술인들을 “정책의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닌 “정책의 입안자이자 수행자”로 본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위는 단순히 정부시책의 집행기구가 아니라 예술인의 정책참여를 전제하는 절반쯤 자율적인 기구인 것이다. 그러나 김정헌 위원장의 불법해임 사태나 이번 확인서 소동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예술위는 행정기관의 말단부서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를 더 들여다보면 예술위와 문화부만 비판하는 것은 문제를 정조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알려진 대로 지난해 말 국회는 시위 관련 단체의 지원 배제라는 예결위원장의 부전지를 붙여 예산안을 기획재정부로 넘겼고, 이것이 정부의 2010년 ‘예산 및 기금운용 집행지침’이 되었다. 이에 따라 올 1월 말 행정안전부는 불법시위 혐의가 있는 단체를 지원사업에서 제외할 방침이며 내년에는 그런 단체의 지원신청을 접수조차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근원은 국회인가.

여기서 시선을 조금 옆으로 옮겨보자. <겨레말큰사전>이 무엇인지 아는 국민은 유감스럽게도 많지 않은 듯하다. 남북분단이 오래돼 양쪽 언어가 크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데, 이질화가 더 진행된다면 하나의 국어 안에 통합될 가능성마저 소실될 위험이 있다. 남북 국어학자들이 모여 광범하고 적절한 어휘선정과 합리적인 어문규범 정비를 통해 남북 주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국어사전을 편찬한다면 엄청난 역사적 의의를 가질 것이다. 1861년 완간된 그림 형제의 <독일어사전>이 10년 뒤 달성된 독일 통일에 어떤 정신적 토대를 마련했는지 상기하면 <겨레말큰사전>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올 들어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회에도 사업자금이 중단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 중단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사전편찬사업회는 시위와 관계가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국회에서 법(2007년 4월 통과)으로 사업 지원을 보장한 기구다. 그러기에 지난해 11월 중간보고회에 야당 대표와 여당 소속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이 함께 참석했던 것 아닌가. 산하 법인의 사업 진행을 통일부 자신이 가로막고 나설 리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숨어서 민주주의와 분단 극복에 관련된 활동들을 감시 통제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숨은 손은 떳떳이 실체를 드러내고 국민의 심판을 받으라.


 

염무웅|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경향신문. 2010.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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