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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좋은 기업, 강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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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15 10:27 조회18,0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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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업 현장의 친지들과 편한 모임 자리를 가졌다. 자연스럽게 어느 기업이 좋고 강한가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먼저 화제에 오른 기업은 도요타 자동차였다.

지금 도요타가 시스템의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일치된 의견이었다. 도요타는 새로운 기업 시스템의 전형을 창조한 혁혁한 기업이었다. 도요타 시스템은 노동자가 폭 넓은 직무를 경험하여 생산현장에서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하여 낮은 원가로 제품을 다양화하고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도요타와 일본식 경영의 한계

그러나 글로벌화가 심화하고 성장중시 전략이 채택되면서 도요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은 원가 절감을 재촉했고, 이는 설계와 부품조달 및 완성차 조립에 이르는 전 과정의 품질관리에 문제를 일으켰다. 최근의 리콜 사태는 글로벌화 과정에서 도요타 고유의 생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도요타의 위기는 일본식 경영의 한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일본식 경영은 봉건제의 유산을 기업시스템에 잘 접목시킨 것이다. 충성과 보호의 교환이라는 봉건제의 원리가 기업에 특수한 기능 축적과 장기고용 체제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하시모토와 고이즈미 총리 집권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경영의 장점은 지속적으로 침식되었다.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일본식 경영의 위기가 한국 재벌기업의 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도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흔히 한국 재벌기업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집행력이 강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장 경험들을 들어보면, 가부장적 전제주의의 일시적 승리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재벌기업은 지금까지는 강력한 통제와 무자비한 경쟁으로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가능한지 회의적 의견이 많다. 이와 관련해 소리 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김용철 변호사의<삼성을 생각한다>에 눈에 띄는 대목들이 있다. "계열사 사장은 얼굴마담에 불과하다…휴무 여부도 결정하지 못하고 구조본의 눈치를 본다…경영자로서 소신을 발휘해볼 여지가 없다…사장단 회의에서 아무도 발언하지 않는다…외국인 인재는 삼성 문화에 적응이 안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재벌기업에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의사결정권의 집중을 통하여 선두기업을 추격하는 능력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두권에 진입한 뒤에는 모방과 추격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일사불란한 세일즈 머신 보다는 창의적인 혁신가가 필요하다.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기풍은 가부장적 권위와 대척점에 있다. 지배와 복종의 문화는 창의성을 억압한다. 어떤 기업은 내부에서 비판적 견해를 제시할 수 없고 외부 비판에는 철저한 봉쇄가 원칙인 모양이다. 그런 조직의 정보전달체계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기업 경쟁력에 큰 짐이다. 여기에는 대기업의 책임도 크다. 연구개발인력이 대접을 못 받고 강압적 분위기에서 단기실적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그러니 기업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고 우수 인력은 자격증 직업, 지대(地代)수취 계층을 선망하게 된다.

기업의 본질과 정의에 가깝게

모임 끝자리에는 솔직한 질문이 나왔다. 어느 기업에 투자하면 좋을까. 이런 물음에는 역시 정석에 해당하는 답을 내놓게 된다. 현대적인 기업의 본질과 정의에 가장 가깝게 운영되는 기업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기업은 팀 생산의 감독자를 전문화한 존재이거나(앨치언과 뎀세츠), 개인들 사이의 계약을 연결한 법적 허구체이다(젠슨과 메클링). 또는 기업은 복잡한 현실 문제들에 대해 적응하는 거버넌스 구조(윌리엄슨)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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