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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수도권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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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10 09:11 조회18,7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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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논란 속에서 사회적 관심의 초점은 한나라당 내 계파간 투쟁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그것은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새로운 지역주의의 발흥과 관련해 조망할 필요가 있다. 남한 사회는 지난 수십년 동안의 경제발전 패턴의 귀결로 수도권 중심의 거대 도시국가 형태로 진화해왔다. 인구,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수도권은 나머지 모든 지역의 합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무역의존도 90%가 넘는 경제구조가 형성하는 사회적 부 대부분이 수도권에 축적되고 있다. 수도권 인구의 자기재생산이 강화됨에 따라 지방은 수도권 주민과 연결된 고향에서 한낱 배후지로 전락해 갔으며, 더불어 수도권의 자립화 경향도 커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수도권이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기화로 자신의 이익을 자각한 지역주의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나 지금이나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부와 권력의 지역적 재분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재분배의 양상은 명료한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감지 가능한 형태로 표상되고 있다. 실제로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이동할 경우 그것이 수도권 주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보라.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이동하고 관련 기업들도 점차 따라가기 시작할 텐데, 여전히 각종 사회적 권력과 인프라에서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벗어나 세종시로 이동하는 것은 불안감과 소외감을 부채질할 것이다. 예컨대 지금 중학교 다니는 자녀를 데리고 세종시로 이동해야 하는 공무원을 생각해보라. 장기적으로는 세종시에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겠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종시로의 이동이 현행법대로 이루어진다면 수도권 부동산 가격 또한 떨어질 것이다. 그런 부동산 가격 하락은 장기적으로 수도권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겠지만,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부유층에만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가계의 부가 대부분 부동산에 파묻혀 있기에 단기적으로는 수도권 주민 상당수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빚을 얻어 집을 산 사람, 상가에 투자한 사람, 상가에 권리금을 내고 들어간 자영업자 등 많은 이들이 불안정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의 세종시 정책은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이익의 괴리를 조정하는 정교함, 다시 말해 ‘이행의 골짜기’를 덜 고통스럽게 통과하게 해줄 비전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전 부재의 대가 가운데 하나가 수도권의 수호자로 자처한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이었다. 그는 수도권 중심주의의 첫번째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집권 뒤에도 변함없이 수도권 중심주의를 관철하고자 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현재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상승과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 하락도 일부는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면, 단기적인 이익의 재분배가 야기하는 불안을 달랠 보완조처가 없는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이나 지속불가능한 발전 패턴을 고수함으로써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이명박 정부의 행보 모두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확실히 더 나쁜 쪽은 이명박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부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괴물을 계속해서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어떤 지역주의보다 더 강력해서 활성화될수록 수도권 바깥을 인적 드문 황무지로 만들고 그 내부를 푸시맨에게 의존해야 문이 닫히는 출근길 지하철로 만들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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