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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새내기들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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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02 11:24 조회18,4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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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연기였다. 절절한 노력 끝에 "인생의 목표를 막 이뤘다"며 절정에서 흘리는 눈물에 함께 감격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 안쓰러움이 솟아올랐다.

어린 김연아 선수에게는 고통의 기억도 많았다고 한다. 일찍 씌어진 자서전에서는, "'운동하는 로봇'이 된 것 같았다. 미쳐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외로웠다"고도 했다.

칭송 받는 쾌속세대로부터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을 들으면 씁쓸해지기도 한다. 승패의 결과에 따라 '인생역전'이 이루어진다면 경기에 온 인생을 거는 셈이니 얼마나 압박감이 클까 싶다.

점수경쟁은 '능력보다 기능'

졸업과 입학 그리고 새 학년을 맞는 새내기들은 봄이 와도 봄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해마다 치열해지는 경쟁의 압박감 속에서 교문을 들어서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점수경쟁은 승자를 선별하는 기능에는 충실하지만, 노력을 능력으로 만드는 게임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니 공부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교육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말하기도 어렵다.

대학생들도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사회가 각박하다 보니 대학 안에서도 '평범한 상류층'으로 편입되는 안전한 길에 대한 욕망만이 비등하다. 진정 가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고민보다는 곧 바로 '스펙 쌓기' 전쟁에 몰입하고 있다. 계층 상승의 욕구를 탓할 수는 없겠으나, 비효율적인 공부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보다 더 인간적이고 보다 덜 속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근본 처방일 것이다. 우선 가까이서부터, 개인이나 개별 학교 차원에서 능력을 만드는 공부법을 실천하는 노력도 급하다.

한국의 학생들은 영어시험 점수를 높이는 데 엄청난 힘을 쏟아 붓고 있다. 진학과 취업과 승진에서 영어 평가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부 기업에서는 영어소통능력을 생명선처럼 말하고 어떤 대학에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의 희소성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잘 따져보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영어시험 점수를 따지거나 일단 영어로 잘 떠벌리는 것을 높이 쳐주었다. 그러나 그 것은 내국인의 기준이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인들 영어는 발음은 유창한데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국인들은 박사학위가 있어도 말과 글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모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워낙 영어공부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이들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성숙한 사회가 될수록 영어시험 점수나 유학 여부가 선별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정도는 약화될 것이다.

점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소통의 재료가 되는 스토리나 주장이다. 상당한 고급단계가 아니라면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통해 논리적 사고를 훈련하는 것이 정석이다. 영어 등 외국어는 좋아 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잘 말하고 잘 쓸 수 있다. 논리력을 갖추는 데는 수학공부와 글쓰기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수학교육은 논리적 사고력보다는 암기력과 인내력을 시험하고 학생들에게 지성의 즐거움보다는 학대와 상처를 체험하게 한다.

글쓰기는 아예 공부의 대상에서 제쳐 놓고 있다. 글쓰기를 하려면 읽고 생각하고 고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렇게 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반지성적 풍토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기업들은 점수화하기 어려운 글쓰기의 중요성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읽고 쓰기 중요성 명심해야

그러나 창의와 혁신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기라면 지금과 같은 평가의 잣대는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통합과 융합, 교양과 인문주의를 중시하는 세련된 기업도 늘고 있다. 그러니 새내기들은 읽고 쓰는 것이 공부의 기본임을 깊이 새겼으면 한다. 학교와 사회도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 김연아 선수에게도 고전을 읽고 자기 글 쓰는 공부 기회를 허락해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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