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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민주적 법치국가의 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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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1-27 10:30 조회26,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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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 속에서 사람들은 헌법 제1조를 노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시민들은 여러번 국가의 폭압에 도전했지만, 이렇게 자신들을 법의 저자의 자리에 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 민주적 법치국가의 이념이 시민들의 자의식 속에 아로새겨졌고, 촛불항쟁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공언하고 확증하는 경험을 가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한민국이 건국 후 60년이 걸려 도달한 이 민주적 법치국가의 이념이 자기 확증에 이른 그 순간 부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법치란 바로 법의 저자인 시민들을 법의 단순한 수신자로 강등하려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민주적 법치국가로부터의 퇴행이라고 할 수 있다. 법치국가는 민주적 법치국가처럼 법 형성과 적용의 맥락을 시민들의 민주적 의지와 대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이 언론과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민주적 법치국가를 법치국가로 후퇴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법치가 함축하는 법 집행자의 자기 제한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정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법치를 법을 이용한 지배로 한 단계 더 퇴행시켰다. 충성과 승진의 노골적인 교환 속에서 정권의 잘 벼린 칼이 되어버린 경찰과 검찰은 효성 비자금 사건이나 장자연 사건 또는 한상률·안원구 사건 같은 것은 마지못해 수사하는 시늉을 하고 촛불시민, 피디수첩, 철거민, 전직 대통령, 그리고 전교조 교사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수사를 전개했다. 용산참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도 검경의 이런 행태를 바꾸지 못했다.

 

계속되는 검찰의 기소는 유죄판결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행태이다. 무죄판결에도 부끄럼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직업윤리를 상실한 검찰이 목표로 하는 것은 정권에 부담이 되는 시민이나 언론인 또는 정치인 혹은 시민운동가를 소송 속으로 몰아넣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오명을 씌우는 것 자체이다. 소송 자체를 징벌화한 것이다.

 

그런 무리한 기소가 계속해서 무죄판결에 직면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사법부는 민주화 이후 독립성을 획득하긴 했지만 공정한 판결로 사회적 신뢰를 받아오던 집단은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 문제나 헌법재판소의 언론관련법 관련 결정은 그런 점을 보여주는 가까운 예이다. 그런 사법부에 의해 무죄판결이 계속된 것은 검찰이 얼마나 무리한 기소를 해왔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과 단체들 그리고 놀랍게도 대한변협까지 가세해 오래된 색깔론을 들먹이며 법원을 위협하고 있다.

 

사법부를 굴복시키려는 보수층의 궐기가 굴복은 몰라도 일정한 순치 효과를 낼 수 있으며, 그렇게 조장된 논란을 빌미로 검찰은 항소의 근거를 마련할 것이다. 그것이 정권에 항의하는 사람들의 발을 최대한 오랫동안 묶어놓을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법원이 2심이나 3심에서도 계속 무죄판결을 내놓을지도 불확실할뿐더러 길어진 소송 과정은 소기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민주적 법치국가가 이렇게 법을 이용한 통치로 퇴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단은 선거이다. 지금 논의되는 야권의 선거연합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법을 자유의 보장 수단으로 만드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당들이 기득권과 기회주의 또는 과도한 명분 속에서 내부협상에 실패한다면, 그들은 이 커다란 퇴행을 방임한 책임에 직면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0.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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