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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시대를 읽지 못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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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1-14 07:46 조회22,4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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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 이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일본의 지역주의 정책이 눈에 띄게 발전해가고 있다. 양국 모두 지역공동체 형성 필요성을 크게 강조하며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 혹은 추진 중에 있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한동안 거세게 불었던 지역주의 열풍이 근 10년 만에 다시 이 지역에 찾아온 듯하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사뭇 다르다. 중국과 일본은 분명 많이 변했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은 대체로 동남아 10개국과 동북아 3개국(한·중·일)으로 구성된 ASEAN+3 중심의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움직임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눈치를 많이 살폈다. 심지어 2005년에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출범을 주도했다. EAS는 기존 ASEAN+3에 친미 ‘역외 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 등을 포함시킨 광역 지역협의체이므로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과 같이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적극적인 국가는 EAS를 역내에 미국의 영향력을 존치시키기를 원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 작품이라고 힐난했다. 이유야 어쨌든 일본의 EAS 중심론은 결국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일본이 지난해 9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크게 변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과거 자민당의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매몰돼 있었으나 이제 민주당의 일본은 거기서 벗어나 내수 중심의 경제발전과 복지 및 사회안전망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 사회를 건설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미국보다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긴밀히 해 지역 공동통화 창설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노력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일본은 ASEAN+3 중심의 ‘동아시아 국가’로 회귀하고 있다.

중국의 동아시아 중심주의도 과거보다 더욱 강고해졌다. 사실 중국은 미국발 경제위기 이전부터 미국 등 역외시장 의존적인 자국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의 한계와 그에 따른 자국 경제의 취약성을 점차 인식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발발한 미국발 경제위기는 중국으로 하여금 더 분명하고 확실한 대외 경제정책의 전환을 꾀하게 한다. 즉 불 보듯 뻔한 미국 소비시장의 위축과 달러화의 위상 하락에 대응해 가능한 한 빨리 기존의 대역외 중심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대내적으로는 복지와 분배 강화 등을 통한 내수 진작, 대외적으로는 (미국 등 역외시장을 대체할) 대안 통상 공간의 확보를 위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발전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 최근 중국이 한국·일본·타이완 등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 양자 간 FTA가 이미 발효된 중·ASEAN FTA와 연결될 경우 이 지역에 드디어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될 것이며, 그것은 종국에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로 발전해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는 지역주의 전략 포기했나


이와 같이 현재 중국과 일본은 수출보다는 내수, 미국보다는 동아시아, 그리고 ASEAN+3의 외연 확대보다는 그것의 내용 심화에 초점을 맞춘 지역주의 전략을 전개해가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남미국가연합(UNASUR) 등에서 보듯 이미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역주의 경로를 통한 세계화,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언, 달러 가치의 하락과 소비시장의 축소 등으로 요약되는 미국 (경제) 헤게모니의 추락, 동아시아의 부상 등 이미 21세기 초에 분명히 관찰되는 거대한 시대 변화를 감안한 합리적 선택인 것으로 평가된다.

동북아 3개국 중 오직 한국만이 아직 이러한 선택을 못하고 있다. 내수 확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까닭에 복지와 분배 정책을 경시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영국이라던 일본마저도 ‘탈미입아(脫美入亞)’를 도모하는 판에 한·미 FTA의 성사에 매달리는 등 미국 편향 자세는 여전하다. 한국의 지역주의 전략을 얘기하자면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사실 김대중 정부 당시의 한국은 ASEAN+3을 주도한 국가였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발전 경로를 제시했고, 그에 필요한 주요 제도를 설계했다. 그랬던 한국이 노무현 정부에 가서는 안보 중심의 ‘동북아시대론’을 펼치며 앞선 정부의 훌륭했던 지역주의 전략을 스스로 왜곡·축소하더니, 이제 이 정부에 와서는 ‘신아시아 외교’라는 지향성 불명의 노선을 앞세우며 아예 지역주의 전략을 포기한 듯한 품새를 취하고 있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국가의 앞날이 심히 우려되는 새해 벽두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

(시사IN, 2010.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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