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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집합적 평상심’의 해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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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1-05 23:40 조회19,2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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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첫해가 촛불로 대변되는 항쟁의 해였다면, 두번째 해는 정치적 죽음의 해였다. 산참사로 시작된 정치적 죽음에는 유명을 달리한 두 전직 대통령과 쌍용자동차 가족들의 죽음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고 열정과 재기 넘치는 아름다운 체험을 빚어냈다면, 후자는 우리 사회 성원들을 깊은 애도와 우울로 몰아넣었다. 지난해 대중이 <엄마를 부탁해>, <마더>, <해운대> 같은 작품들에 이끌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해 사이에 집합적 열광이 집합적 우울로 교체된 셈이다. 이런 교체는 촛불항쟁을 통해 분출된 심층적인 정치에 대해, 그런 정치의 숨구멍을 틀어막으려는 공안통치가 조금씩 힘의 우위를 점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2010년은 어떤 해가 될까, 아니 어떤 해가 되어야 할까? 나는 올해가 집합적 열광과 우울을 넘어서는 ‘집합적 평상심’의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실 올해는 지난 100년간 험난했던 근대사의 중요한 고비들이 여럿 겹쳐 다가오는 해다. 이미 자주 언급되었듯이 한일병합 100돌이며 한국전쟁 60돌이고 4·19혁명 50돌이며 광주항쟁 30돌, 남북 정상회담 10돌의 해다. 굽이쳤던 역사 과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한해 내내 계속될 것이며 그런 논의가 심각한 해석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석의 갈등은 현재 우리 사회 여러 집단 사이의 갈등과 깊이 연계된 동시에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끌지와 관련된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 될 것이다.

 

짐작건대 이명박 정권이나 그를 에워싸고 있는 보수진영은 식민지나 독재의 고통스런 대가를 경제성장의 단선 구도 안에서 지워버리고자 할 것이며, 한국전쟁 60돌을 역사 해석의 중심에 놓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민주주의의 주체인 국민 자체를 형성하고 주권을 회복하려 한 ‘국민의’ 투쟁사와 그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했던 민주화의 장정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쳐내고자 할 것이다. 이런 해석의 갈등 속에서 한반도 주민의 경험을 온전히 복원하는 동시에 미래를 이끌 올바른 역사적 감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도반의 마음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거니와, 함께하는 평상심 없이는 그 일을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평상심은 지방선거라는 정치일정 때문에도 중요하다. 이명박 정권은 날치기 통과된 4대강 예산으로 상반기에 대규모 경기부양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며,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그 후유증쯤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또한 내치의 방편으로 동원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들은 공안과 결합된 이 두 가지 통치술로 지방선거를 돌파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역사 해석을 실행을 통해 강요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도전에 대응하려면 나의 평상심으로 너의 평상심을 지켜주고 너의 평상심에 기대 나의 평상심을 지키는 연대감이 요구된다. 열광과 애도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긴 하지만 거기서 지혜로운 정치적 방안이 자연적으로 풀려나오지는 않는다. 그런 힘을 제어하는 동시에 천천히 연소시켜내는 신중함과 기꺼이 함께 머리를 모으는 자세만이 대안적인 정치연합과 정책연합을 창출할 수 있다. 2010년은 우리 모두 정치적으로 유효하기 위한 길을 끝까지 놓지 않는 끈기있는 집합적 평상심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한 사회의 더 깊은 민주화가 한반도 주민 모두의 더 나은 삶을 향한 유일한 경로임을 잊지 말자.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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