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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시장은 해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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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22 08:18 조회28,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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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나 불행한 가정엔 제각기 다른 불행이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에 나오는 유명한 어구다. 경제는 이와 반대인 것 같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은 대개 비슷하니까 말이다. 물론 구체적인 위기의 양상이나 기술적인 원인은 위기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위기는 하나의 단순한 근본원인에서 비롯된다. 특권층에 의한 정치왜곡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제학 교수인 사이먼 존슨은 ‘조용한 쿠데타’라는 글에서 자고로 경제위기란 부와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좋은 시절에 과욕을 부리다가 지나치게 위험한 일들을 벌인 것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정부와 민간 부문의 엘리트들이 긴밀하게 얽힌 과두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기보다는 마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과두체제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제어되지 않고 마구 벌어진 것이라고 진단한다.

존슨 교수의 말이 좀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주의자이거나 적어도 상당히 좌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자이겠거니 짐작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존슨 교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주류 중의 주류 경제학자이고, 무엇보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사람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 수많은 나라의 정부 관리들이 위기가 코앞에 닥쳐서 IMF를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한 경험에서 그는 절제를 잃어버린 과두체제가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경제위기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여러 가지 정교한 모델과 이론이 있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라는 것이다.

물론 과두 엘리트가 아닌 대중의 과욕도 문제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나 복부인들의 투기바람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문제는 정부가 정신차리고 있으면 금방 잡을 수 있다. 적절히 경기를 식히기만 해도 되고 좀더 정교한 정책을 구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두 엘리트들이 벌이는 도박판은 워낙 판이 큰 데다 이들이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파멸적인 위기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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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대신 ‘마약’ 처방하는 정부

문제의 원인이 정치이니 문제의 해결책도 정치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경제위기에 경제적 해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과도한 욕심으로 밀고나가던 사업들을 정리하고 망가진 은행을 구조조정하는 등 경제의 수술이 필요하다. 직장을 잃고 가게 문을 닫는 등 죄도 없이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적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이러한 경제해법들을 고안하는 것이 어려울 것은 없다. 문제는 정치다. 경제해법의 핵심은 구조조정이고, 이는 가장 힘 있는 자들이 피를 흘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두체제의 파트너로서 함께 좋은 시절을 즐기던 정부와 정치권의 엘리트가 민간 엘리트에게 칼을 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흔히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국민 주머니를 털어 잘못된 사업에 뒷돈을 대주는 일들이 발생한다. 수술을 하기보다는 마약이나 투여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위기가 심각하지 않을 때는 마약 처방으로 넘길 수도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72년의 8·3조치였다. 재벌기업들의 채무부담을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서 경감시켜 준 조치였다. 그러나 문제의 크기가 심각하고 외국의 빚쟁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그게 어렵다. 민주화가 되면 국민들도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수술이 지연될수록 환부는 더욱 곪아 들어간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그래도 한국은 구조조정을 잘 했다고 평가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상은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손실이 불필요하게 확대되었던 경험이 있다. 99년에 몰락한 대우그룹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김우중 회장의 로비에 의해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정부는 제2차 공적자금 조성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썼건 쓰지 않았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경제위기를 맞은 과두체제 정부가 하는 일은 국민세금으로 과두 엘리트들의 손실을 막아주면서 버텨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둑이 무너지고, 경제는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진다. 폭동이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는 것도 예사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야 엘리트들에 대한 손실 부과와 책임추궁이 이루어지고, 그리하여 비로소 경제회복의 초석이 놓인다.

‘월가-워싱턴 통로’와 구제금융

사이먼 존슨은 자신이 보아온 개도국들의 위기와 미국의 금융위기에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금융엘리트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의회는 물론 언론과 학계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엄청난 과욕을 부리다가 위기를 자초했다. 절제를 잃은 과두체제가 낳은 경제위기,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다른 나라와 같기만 할 수는 없다. 존슨은 미국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세계 최강인 것처럼 과두체제도 가장 발달해 있다고 한다. 적나라한 폭력과 부패로 유지되는 과두체제가 아니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매우 정교하게 영향력과 이권의 교환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월가-워싱턴 통로”라고 부른다.

미국이 남다른 점은 또 있다.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은 통화위기로 IMF를 찾아갈 일이 없고, 금융위기가 닥쳐도 돈을 찍어 문제해결을 연기할 수 있는 여지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다.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심지어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미국이 바로 문제의 진원지라는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진다.

고도로 발달된 “월가-워싱턴 통로”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미국 정부의 위기대응 방식을 결정했다. 타국이 위기에 처하면 IMF를 앞세워 강력한 긴축과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던 미국 정부가 자국의 위기 앞에서는 대대적인 경기부양과 관대한 구제금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돈을 뿌려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은 것은 결코 잘못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금융 과두엘리트들에게 손실을 최대한 부담시키고, 책임을 묻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개혁조치를 취하는 등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 정부는 금융권에 끌려다니면서 금융엘리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 지원만 계속하고 있다. 월가의 엘리트들이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오바마 정부도 과거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 그 결과는 뻔하다.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목숨을 부지한 금융기관들이 일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액수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고수익-고위험 상품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개혁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실물경제는 실업과 소비침체에 짓눌려 아직도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는데, 골드만삭스는 올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소식도 들려온다. 이런 식으로 해서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미국이라도 마구 돈을 뿌린 후유증은 언젠가 나타날 수밖에 없고, 구조조정 없는 구제금융은 결국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대공황보다 더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금산분리 완화’라는 시한폭탄

이와 유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1년 전 우리 경제는 외화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금융경색이 심화하면서 살얼음판을 기었다. 과도한 단기외채 누적, 부동산 투기 붐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건설업 부실과 가계부채 문제, 날로 심화되는 기업 양극화의 그늘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소기업 문제, 외형 경쟁에 빠져있던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 등으로 경제가 곪아 있던 터에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쳐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과 발권력을 총동원해 금융권과 실물부문을 지원했다. 금융시장 붕괴를 막아낸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신나 하기엔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구조조정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생경제는 침체에 빠져 있고 양극화는 악화일로인데, 벌써 집값 거품이 재현되고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뇌관을 제거하기는커녕 더욱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시중금리는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가 억지로 경기를 끌고 나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진 미국과 유사하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보다 한 술 더 뜨고 있다. 미국은 그나마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규제 강화안을 발표하고, 금융권과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선진금융 운운하며 금융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은 핵폭탄처럼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97년의 외환위기를 비교적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적자금 투입에 의한 금융구조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덕이다. 오랜 관치금융의 전통 탓도 있고 해서 구조조정에 저항할 만한 힘이 있는 금융 과두엘리트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산분리 완화는 결국 재벌이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길로 이어진다. 이미 법 위에서 노는 것이 우리나라 재벌이다. 이들이 금융지배를 강화하게 되면 과연 누가 이들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금융 감독으로 제어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미국에서도 금융엘리트는 감독을 무력화하지 않던가. 금산복합 과두엘리트의 탄생은 초대형 경제위기를 불러올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자유 시장경제를 한답시고 금융규제를 다 풀어버린 뒤 금산복합기업집단들의 거대한 투기 물결에 경제가 휩쓸려 내려갔던 80년대 초 칠레 등 남미 국가들의 비극이 한반도에서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정치논리와 경제학의 미래

흔히 경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지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때 경제는 건전하게 돌아간다. 힘 있는 자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자가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더욱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경제는 발전하지 못한다. 경쟁과 혁신보다 로비와 부패에 의해 자원배분이 좌우되면 경제는 망가진다. 그러나 경제적 약자들에 대해 배려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도 정치논리라면 정치논리겠지만, 그건 사회통합과 인적 자원의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쟁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도 약자 보호는 필요하다.

경제가 정치를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를 잘 되게 하는 정치는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돕는 정치다.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서 세금을 걷어 교육, 보건이나 인프라 등 사회적 효율성이 있는 곳에 투자하는 정치다. 이게 민주정치의 요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대체로 경제도 발전했다. 그런데 경제논리만 앞세우는 이들은 마치 경제와 정치가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들은 대개 강자들에 의한 천문학적인 왜곡은 못 본 체하고, 노동조합 등 약자들의 자구노력을 정치논리라고 공격한다.

강자에게 정부가 휘둘릴 때, 그 폐해는 약자들의 정치논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경제논리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경제학자가 현실문제에 부딪히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변신한 예는 많다. 상아탑에만 있을 때는 미국 경제의 양극화가 기술변화의 결과라고 주장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이제는 극우파가 공화당을 장악하고 정권을 잡아서 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한 예다. 스티글리츠와 바그와티 등이 자본거래 자유화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대해 월가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 정부와 IMF 등이 나서서 추진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학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비현실적인 가정에 입각해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고, 효율과 분배를 분리하는 경제학. 그러고는 정치와 분배는 논외로 한 채 경제논리와 효율성만을 따지는 경제학. 그래서 정치와 분배가 과두엘리트들에 의해 왜곡되어도 자유시장 찬양만을 늘어놓는 경제학. 이런 경제학은 이제 퇴장해야 한다. 누구보다 일찍이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방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자에 의한 시장 왜곡을 방지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이 건전한 시장경제 발달의 필요조건임을 강조했다.

한국 경제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과두엘리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민생과 미래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09.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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