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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정운찬과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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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21 21:04 조회28,3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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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은 중국의 건국 기념일인 국경절이다. 침략과 내분으로 찢기고 부서진 영토를 수습하고 새로운 국민국가의 체제를 수립한 지 이제 60년이 되었다. 개혁ㆍ개방을 시작하던 30년 전, 중국은 자본주의에 손을 다시 내밀었지만, 이제 전 세계는 경제위기 속에 홀로 의연한 중국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오늘의 중국을 만든 건 쑨원

축제의 계절을 맞는 중국인들은 건국 60주년에 누구를 맨 먼저 기억할까? 100여년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을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재구성한 마오쩌둥(毛澤東)일까?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한 덩샤오핑(鄧小平)일까? 마오와 덩이 대단한 공로자임에 틀림없지만, 이들이 오늘의 중국을 축복한 것만은 아니다. 마오의 시대는 두 개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죽었으나 사회주의는 태어날 힘이 없었다. 덩의 시대에는 비교적 평등했 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현대 중국이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이는 쑨원(孫文)이다. 쑨원이 없었다면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완전히 분할되어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모양으로 지배되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천황을 옹립하면서 근대적인 체제를 수립했기에, 중국의 개량파들은 이를 따라 황제를 보위하면서 개혁을 통해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의 관료제를 돌파할 수 없었으며,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수구파들은 광서제와 변법파의 개혁연합을 붕괴시켰다. 개량파들은 혁명으로 인한 체제 붕괴가 제국주의의 침탈의 공간을 넓힐 것으로 우려해 입헌제를 추진했으나, 만주족 중심의 지배체제는 개혁을 수용하지 못했다.

결국 혁명이 불가피해졌고, 쑨원은 새로운 체제를 형성할 인물들이 집결하는 상징과 구심이 되었다. 기존의 질서 하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던 이들은 청조를 타도하는 혁명운동의 길에 모이게 되었다. 혁명운동의 기반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계층과 공간이었는데, 쑨원의 노선은 이들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역할 속에서 진화․발전한 것이었다.

쑨원은 청 제국 타도를 위해 어떤 세력과도 타협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체제 내 개혁파와도 연합하려 했고, 급진적인 공화파에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리훙장(李鴻章)을 황제로 추대하려고도 했고,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민국의 총통직을 내주기도 했다. 마오나 덩이 그러한 것처럼, 쑨원도 일관되고 숭고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캉여우웨이(康有爲)나 량치차오(梁啓超) 같은 개량파들의 입론에 일목요연한 면이 있다. 캉여우웨이는 국가ㆍ종족ㆍ남녀 차별이 없는 이상사회의 비전을 지니고 있었으며, 량치차오는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국민국가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정치 경험이 부족한 미숙한 급진적 지식인 집단에 그치고 말았다.

반면 쑨원은 운동가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집단을 형성하고 확대하는 능력을 개발했다. 중국의 개량파들은 메이지유신의 길을 따르려 했으나 실패했고, 쑨원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구체제를 타도하고 제국주의와 결전했고, 이 과정에서 국가 형성과 국민 통합의 기틀을 마련한 영웅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조선은 유신으로도, 혁명으로도 구체제를 청산하지 못했다. 결국 식민지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으며, 분열과 갈등의 유산은 아직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반도에는 아직도 '존경'이라는 단어에 값하는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시험대 오른 정ㆍ박 두 사람

그러한 중에 드물게 두루 평판이 좋은 두 사람이 정치 현장에 발을 내딛고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뜻으로, 또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경제학자 정운찬 교수는 보수파 정부의 총리직을 수락하면서,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는 국가로부터 소송을 당하면서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시험대에 올랐다. 길은 다르더라도,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에 큰 일 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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