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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새로운 ‘복지 자본주의’ 한·중·일이 뭉치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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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11 09:26 조회29,2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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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총 의석의 64%를 차지한 일본의 국내정치 변화가 놀랍다. 어쩌면 앞으로 일본의 대외정책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차기 총리가 될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선거 전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과 민주당이 취할 정책기조를 미리 밝힘으로써 이미 그러한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관심을 끈 대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민당의 일본은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만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매몰돼 있었다.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 내수 중심의 ‘국민경제’ 발전과 복지 및 사회안전망의 충실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미국보다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여 지역 공동통화의 창설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공동체 형성 노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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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의 포부대로라면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은 이제 일본의 국가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 목표는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다른 목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실 일본 사회는 1990년대 초반 이후, 특히 고이즈미 정권(2001~2006) 하에서 급격히 진행된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다. 분배와 평등의 가치가 지켜지던 과거의 ‘총중류사회’(모두가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사회)가 어느새 시장의 자유만이 존중되는 ‘격차사회’로 변한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더니 최근에는 결국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34%를 넘고 실업률 역시 사상 최악인 5.7%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보장은 양과 질 모두 더 나빠졌다. 당연히 빈부격차는 심화됐다. 소수의 강자와 다수의 약자 간 갈등 상황은 이제 사회통합의 위기를 우려케 할 정도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화를 추진해온 자민당에 비난이 집중된 것은 사필귀정이었다.

일본의 신자유주의화는 미국 변수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레이건 정부 이후의 미국은 가령 80년대 중반의 ‘엔-달러 위원회’나 90년대 초의 ‘미·일 구조협의’ 등을 통해 자기식의 금융자본주의와 자유시장 체제를 일본에 이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일본이 신자유주의에 빠져들게 된 것은 상당 부분 그 이념의 확산을 주도한 미국의 영향 때문이란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90년대 초·중반의 ‘한·미금융정책협의’ 이후 급격한 금융 및 자본 시장 자유화 정책을 택하게 됐다. 그 졸속 개방에 기인한 바가 큰 97년의 외환위기 발생 이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운 미국의 신자유주의화 압력에 더욱 취약해졌다. 그 압력은 이제 (만약 협정 내용 그대로 발효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가해질 형국이다.

일본이나 한국만이 아니다. 동아시아와 중남미의 대다수 국가들도 특히 그들이 외환위기 등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압력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동유럽의 체제전환국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외가 있다면 오직 서유럽과 북유럽의 유럽연합(EU) 회원국들뿐이었다. 흔히 80년대 이후 (적어도 작년의 미국발 경제위기 이전까지는) 전 세계가 영미식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혹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수렴해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서유럽과 북유럽 중심의 EU식 경제통합을 간과하고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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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지역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된 80년대와 90년대에도 영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에서 (비록 과거에 비해 시장의 비중이 어느 정도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이 여전히 국가 및 사회의 개입이나 조정에 의해 영향 받는 이른바 ‘조정시장경제’ 체제가 거의 원형대로 유지되었다. EU는 바로 이러한 조정시장경제 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통합체다. 이들 국가는 EU를 형성함으로써 스스로를 위한 안정적인 통상, 투자, 금융 및 통화 공간을 역내에 조성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역외 세력인 미국의 신자유주의 압력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유러피안 드림’의 요체인 복지 자본주의가 이 지역에서 지금까지도 건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의 경제통합체로 뭉쳐 신자유주의의 침투를 관리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일본과 동아시아로 가보자. 민주당의 일본이 진정 신자유주의로부터의 탈피를 동아시아공동체의 추진과 연계하여 완수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EU식 경로를 밟아가겠다는 의미일 게다. 폐쇄국가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일본에도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지역과의 경제통합은 끊임없이 추구해가야 할 과제다. 기술의 발전과 거래비용의 감소 등에 따른 무역과 투자 영역 등에서의 경제통합 수요는 내부로부터 줄기차게 창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화를 지속케 하거나 촉진케 하는 경제통합만큼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 지금 일본의 입장이다. 과거 자민당의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주의 혹은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광역지역주의 틀에서의 경제통합을 도모해왔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일본 경제의 미국화 혹은 신자유주의화였다고 볼 수 있다. 경제통합은 참여국들의 경제 정책 및 제도, 종국에는 체제를 수렴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고 그 수렴은 많은 경우 상대적 대국의 것을 상대적 소국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제 미국 주도가 아닌 새로운 틀에서의 경제통합을 모색해야 한다. 그 틀이 바로 동아시아 지역주의가 아니겠는가.

경제통합의 수요를 상당 부분 역내에서 채워간다면, 즉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추진해간다면 민주당의 일본은 자신의 국내적 목표를 보다 더 유리한 환경에서 달성해갈 수 있다. 상기한 대로 일본은 이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탈피하여 내수 중심의 신경제구조를 구축함과 동시에 삶의 질이 보장되는 나름의 복지사회를 건설해가고자 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 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통합 과정에 편승해서는 이루기 어려운 목표이지만, 지금부터 새로운 방식에 의해 주체적으로 추진해갈 수 있는 역내 국가들과의 경제통합 과정에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역내 국가들과 협력하여 동아시아에서 이른바 ‘사회통합형 경제통합’을 진행시켜갈 수 있다. 경제통합의 수요는 일본뿐 아니라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 모두에서 부단히 증대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공동 수요에 부응하여 지역 경제통합을 발전시키되 그것이 개별 회원국의 사회통합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을 우리는 사회통합형 경제통합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각국의 복지 확충을 요구한다. 경제통합에 수반되게 마련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의 확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동아시아 각국의 경제체제는 약자 보호에 강한 유형, 즉 ‘복지 친화형’ 경제체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일본 스스로가 현재 원하고 있는 유형의 자본주의이기도 하다.

일본은 역내 최강의 경제대국이다. 따라서 지역 경제통합에 따른 역내 국가 간의 경제체제 수렴 과정에서도 최대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통합에서 수세적 위치에 머물러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이다. 스스로가 먼저 복지자본주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경우, 그 노력과 병행하여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을 선도해갈 경우 일본은 그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각국의 복지 친화형 시장경제 체제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경제통합의 체제 수렴 효과는 결국 역내 최대 경제국인 일본의 체제를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다. 역내 국가들의 복지 확충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독일의 주도로 EU 회원국들이 공동 조성하여 역내의 빈곤 계층, 낙후 지역, 취약 산업 등을 위해 사용하는 ‘유럽구조기금’(European Structural Funds)은 좋은 예에 해당한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경제체제가 이렇게 복지 친화적으로 발전해갈 경우 동아시아의 소비경제는 지금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커져갈 것이다. (재)분배 효과가 분명한 복지 및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내수 확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소득 계층과 달리 저소득 계층의 가처분소득과 소비는 사회안전망의 강화와 복지 증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이 내부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성장만이 아니라 복지와 분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낙후 지역의 구매력이 증가함으로써 중국의 (따라서 동아시아의) 소비재시장은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은 물론 동남아와 동북아의 모든 국가들도 이같이 한다면, 동아시아의 (실질 및 잠재적) 경제력과 인구 규모를 감안할 때, 동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발전할 것이 틀림없다. 잘만 하면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 소비시장을 동아시아에 만들어냄으로써 안정적인 대안 통상 공간의 확보라는 지역 경제통합으로의 공동 유인이 역내 국가들 모두에 제공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사회통합형 경제통합을 발전시켜 가면 그와 궤를 같이 하며 일본의 자본주의 역시 새로운 유형의 것으로 발전해갈 수 있다. 요컨대 일본은 ‘탈미입아(脫美入亞)’적인 사회통합형 경제통합을 주도해감으로써 스스로의 체질을 개선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의 사회통합형 경제통합은 일본보다 우리 한국에 더 긴요한 것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그 범위도 더 넓다. 사회적 손실 또한 더 크다. 양극화 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고, 사회복지의 제공은 최저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대외적 취약성은 97년의 외환위기와 금번의 금융위기로 충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직 미국 경제에 매달려 있다. 아니 오히려 그 경제와 통합까지 하려 들고 있다. 내수형 경제구조나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는 모색조차 안 하고 있다.

이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신’일본과의 협력이 시급하다. 사회통합형 지역 경제통합은 일본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편 복지친화형 시장경제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와도 상당한 교집합을 이룰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중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내수와 복지 중심의 신경제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의 협력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중·일 3국의 협업이라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동아시아의 지역주의적 대안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부디 한국이 중·일 사이의 교량역할을 담당함으로써 3국간 협력이 동아시아 전체의 사회통합형 경제통합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09.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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