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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항우는 왜 패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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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1-20 14:39 조회17,9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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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 국회는 '전투' 중이었다. 방송관련법이나 미네르바 구금이 경제 살리기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민초들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억지스러워 보이는 행동과 주장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난장판이 된 국회 뒷면의 구체적 이해관계를 얼핏 짐작할 수 있다. 정쟁을 부추기고 뒷받침하는 세력들이 있으니, 싸움은 계속될 것 같다.

어차피 싸움 구경을 할 참이면, 정말 화끈한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들쳐본 것이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이다. 잘 알려진 대로 사마천 자신이 의지와 진정의 인물인 데다가, 특히 항우본기에는 심금을 울리는 생동감 있는 필치가 돋보인다.

'고향'에 얽매인 천하 독점욕

아마 세상에 나와서 항우만큼 격렬한 드라마를 만든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진 제국에 대항하여 봉기한지 3년째에 다섯 나라 제후를 통솔하여 진(秦) 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천하를 분할하고 서초 패왕을 자처했으나, 다시 5년 후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고 자신은 비장한 최후를 마쳤다. 대체 그는 왜 패했는가?

혹자는 그의 무능과 잔인성 같은 인격적 결함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패배자에게 쉽게 바쳐지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다. 재능이 뛰어나서(才氣過人) 청년들이 그를 촉망했다든지, 초나라 전사들은 일당십(一當十)으로 분전했다든지 하니, 지도자로서의 기본적인 인품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 탈출과 재기를 권유 받았을 때 그가 한 말은, 이끌고 간 팔천 자제를 다 잃었으니 강동 부형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지도자들 중 이 정도 염치와 의리를 갖춘 이를 찾아보기가 쉬운가?

공감할 수 있는 항우 패배의 원인은 사마천이 벌써 지적했다. 항우는 관중을 버리고 초나라를 그리워했으며(背關懷楚), 제후들의 배반을 원망했다(怨王侯叛己)는 것이다. 관중(關中)은 진 나라의 핵심 지역인데, 사방이 물과 산으로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이며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당시로서는 인구의 30%, 경제적 부의 60%를 차지하는 곳이었다. 항우는 그런 중요한 지역을 버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비단 옷을 입었으니 고향에 가서 자랑하고 싶다는 것인데, 진 나라에 대한 반감과 함께, 자신을 지지한 세력기반의 구체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집토끼를 소중히 여긴 것이겠다.

초나라의 붕괴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현실화된다. 한고조 유방은 벽지인 파촉에서 실력을 키워 관중으로 진출한 이후 항우와 겨룰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당장은 항우를 압도할 만한 힘을 갖추지는 못했다. 한신, 팽월 등과 같은 제후들이 출동하여 연합군을 형성하면서 비로소 대세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항우는 한신과 같은 실력자를 포용하고 연합하지 못했을까? 유방이 장량의 권고를 따라 땅의 분배를 제안하여 제후의 참전을 이끌어낸 것을 감안해보면, 항우는 자파 세력의 이해관계 위에서 천하를 독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포용과 중원의 대화로 가야

결국 '사면초가'는 함께 나누고 연합하는 데 실패한 결과이다. 항우는 왜 포용하고 연합하지 못했을까? 사마천의 지적을 그대로 옮겨보자. "자신의 공을 뽐내고,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우며, 옛 가르침을 스승 삼지 않고, 힘으로 천하를 경영하려 했다."

과연 옛 이야기와의 대화는 현재를 다시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보수세력이나 진보세력이나 그 안에는 모두 순결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혼합과 연대가 없으면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 평화와 민생을 위해서는 중도로 나가야 한다. 중도는 정치와 경제의 중앙이고,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가치의 중심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너른 중원에서 만나 대화를 시작하기 바란다. 대화(對話)는 대화(大話)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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