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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그래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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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0-27 10:33 조회21,0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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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한용 기자는 칼럼에서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고 물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방불하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는 경제위기 상황을 맞은 지금, 이명박 정부와 정치권 전반이 보여주는 퇴영적 행태와 무능을 보면 절망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쉽게 절망을 말할 일은 아니다. 70년대 대학을 다닌 많은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정치가 한없이 계속되리라 여겨 절망했다. 그러나 그의 철권통치도 18년 만인 79년 끝이 났다. 광주사태로 정권을 장악했던 전두환 정권도 결국 국민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변혁과 진보를 만들어낸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민중이었다. 이땅의 민중이 주도한 4월혁명, 부마항쟁, 그리고 6월항쟁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를 끝장낸 것이다.

 

얼마 전 인권운동과 관련 있는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중 여러 사람이 이 정권 등장 이래 인권상황의 퇴행을 보면서 심리적 내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유모차 엄마를 협박하는 정권을 보면서 지난 10년 동안 공고해졌다고 믿었던 이땅의 민주주의가 모래성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절망을 입에 올리진 않았다. 한 여성단체 지도자는, 정부가 시민운동 단체에 대한 기업의 기부를 막는 등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운동을 되돌아 볼 좋은 기회로 여긴다고 말했다. 당장의 어려움이 운동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자양분이 되리라는 그의 확신 속에서 우리가 찾는 희망을 본다.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을 거부하며 공정방송을 지키고자 90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와이티엔>(YTN)은 또 어떤가. 해고 등 부당한 징계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 구본홍씨를 와이티엔 사옥에 얼씬도 못하게 막는 그들의 강인함은 한국 언론의 희망을 증언한다.

 

며칠 전 2~3주마다 만나 어떻게 하면 학교를 살릴 수 있을지를 함께 공부한다는 여러 단체 대표인 다섯 분의 초·중등 선생님을 만났다. 교사를 ‘공공의 적’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미친 교육‘을 바로잡을 방법을 공교육의 재구성에서 찾고자 머리를 맞대는 그들 역시 희망의 증거다.

 

그리고 올봄 거리를 메웠던 촛불을 떠올려보자. 처음 어린 학생들이 들어올렸던 미약한 촛불은 시민들의 합류를 끌어내고 축제적 흥겨움과 수준높은 토론, 그리고 민주적 결정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민의를 표현하는 한 시대의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대통령을 머리 숙이게 만들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민의 표현의 틀을 만들어낸 그 자체로서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엄청난 민의 앞에 머리숙였던 정권은 공권력을 앞세워 보복을 기도하고 있지만, 촛불의 주역이었던 유모차 엄마들, 아고리언들, 청소년들은 승리자의 당당함으로 맞서며 언론소비자 운동, 바른 먹거리 운동, 청소년 운동 등으로 촛불을 진화시키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에 눈을 돌리는 이들의 모습에도 우리의 희망은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상당 기간 우리를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내몰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세계를 약육강식의 전장으로 만들어 온 시장만능 신자유주의의 파탄을 보여주는 이 위기는 새 질서를 낳기 위한 산통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이 여전히 미망 속에서 허둥댈수록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추구하는 이들의 노력은 그만큼 더 소중하다. 희망의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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