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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전쟁 무정, 평화 무가(戰爭無情 和平無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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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8-25 09:04 조회24,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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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대만 금문도의 8·23전투를 아시나요?” 이렇게 묻는다면 안다고 답할 사람이 한국에서는 거의 없을 것이다. 허긴 금문도 자체를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중국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야 고작 금문고량주를 통해 금문도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대만인들도 사실은 금문도에 대해 잘 모른다. 금문고량주를 떠올리기는 마찬가지이고, 남자들은 군대에 가 그곳에서 고생스럽게 근무한 사람들이 많아 그때의 쓰라린 기억으로 연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문도는 대만 본섬에서도 비행기로 한 시간 가량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에 위치한 섬이다. 지리상으로는 중국 대륙의 샤먼(夏門)에 더 가깝다. 금문도 해변에서 육안으로 맞은편의 샤먼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금문도가 대만의 중화민국 영토로 들어간 것은 1950년대 들어와서이다. 청조가 아편전쟁에 패배해 대만을 일본에 넘겨준 때도 금문도는 여전히 청조에 속했다. 1949년 내전에서 패퇴하여 대만에 들어온 국민당정부와 대륙을 장악한 공산당정권은 서로 금문도를 차지하기 위해 1949년부터 치열하게 싸웠다. 공산당정부는 샤먼을 장악한 뒤 바로 코앞의 금문을 점령하고 이어서 대만으로 진출하고자 했고, 국민당정부는 이를 막고자 했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625전쟁)의 발발 이후, 금문도는 단순히 국공의 대결장을 넘어 미국과 중국의 냉전 갈등의 첨예한 전략적 요충이 되었다. 금문도를 둘러싼 양측의 잇따른 전투 가운데 가장 격렬했던 것이 바로 1958년 8월 23일에 개시된 전투이다. 그날 시작되어 잠정적으로 전투가 중지된 10월 5일까지 하루 걸러 육해공군이 동원된 포격으로 금문도에 가해진 포탄은 47만 발이라고 한다. 그 후로도 양측의 포격은 간간히 벌어졌는데 전투가 사실상 끝난 것은 1978년 12월 15일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국교를 맺기 전후해서이다.

 

 이렇게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금문도 주민이 입은 피해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그들은 1992년 11월 7일 금문도가 전투지역에서 해제될 때까지 장장 43년을 계엄 하에서 살아야 했다. 대만 본섬이 계엄에서 해제된 1987년보다 5년이나 뒤늦은 것이다. 그들은 한동안 별도의 화폐를 사용했고, 대만 본섬과의 왕래도 제한된 조건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지난 7월 중순 금문도를 처음 방문하였는데, 그곳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에게 국경과 정치이념이 얼마나 작위적인 폭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절감하였다. 금문도는 본래 초국경적 지역문화의 요충이었다. 청조 때부터 동남아 등지의 화교와 연결되는 중계지였고, 복건(閩南) 지역 문화의 핵심고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국경선을 획정하는 전투가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서 벌어졌고 그 결과로 금문도는 샤먼 지역에서 단절된 채 대만의 중화민국 영토로 귀속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1958년의 8·23전투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베이징정부와의 화해를 추진하는 국민당정부의 마잉쥬 총통은 24일 금문도를 방문해 기념식을 갖고 “살육의 전장터를 평화의 광장”으로 만들자는 선언을 발표했다. 사실상 금문도는 2001년 1월부터 중국대륙과의 정기항로가 개설되는 등 이른바 ‘소삼통(小三通)’이 시행되고 있었으니, ‘평화의 광장’으로 가는 길은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평화’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또 어떤 평화인지 엄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번 50주년 기념식에 즈음해 금문현(縣) 문화국이 출간한 기념책자의 제목, “전쟁무정, 평화무정”(戰爭無情 和平無價)이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소삼통이 시행되면서 금문도 주민들은 상업의 기회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와 반대이다. 오히려 자금은 급속히 대륙으로 흘러들어갔는데, 그것도 주로 대륙관광이나 부동산 투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올해 국민당 정부가 출범해 중국과의 삼통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화해의 무드 속에서 금문도의 위치는 더욱 왜소해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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