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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위험성에 '도전하는' 李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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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5-17 09:34 조회18,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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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먹으면 된다” “어느 나라가 자기 국민에게 해로운 고기를 사다 먹이겠느냐”고 말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일에는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수입을 중지할 것이고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 말, 그리고 그것을 좀더 구체화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말이 우리 국민들의 광우병 예방과 관련해서든 미국과의 관계에서든 모두 실효성 없는 말이라는 것은 이미 언론을 통해 충분히 비판되었다. 내게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대통령의 말이 정말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보다 그런 말을 하는 대통령의 사고방식이다.

앞서 인용한 대통령의 세 번째 말은 언뜻 보기엔 정부가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도 국민들의 항의가 거세져만 가자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대책 비슷한 것이라도 내놓으려 한 말로 보인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인용된 세 번의 말 모두, 같은 생각이 상황에 따라 때로는 푸념, 때로는 호소, 때로는 짜증으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중의 말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미국 쇠고기는 아무 문제 없다. 그거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겁을 내나. 무시해도 좋은 확률도 겁나는 사람은 먹지 말라고 그래라(푸념). 내가 명색이 대통령인데, 제 나라 국민들 밥상에 위험한 고기를 올리겠나(호소). 정히 무섭다면, 문제가 생기면 수입 중단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럴 일 없을 거다(짜증).”

이런 얘기에 대해 혹자는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서 말꼬리를 잡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이 대통령을 상황에 따라 이말 저말 둘러대는 사람이 아니라 내적으로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대접하고 있는 거다.

문제는 오히려 그가 일관성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 있거니와, 그의 일관성은 높은 수준의 위험감수적(risk-taking) 성향 또는 위험추구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위험, 그러니까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 사건의 확률을 항상 대면하지 않으려 할 수는 없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 위험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매우 높은 위험이나 확률은 낮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결과가 극히 치명적인 위험조차 함부로 감수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위험에 대한 지각은 매우 안이하고 자신의 표현대로 하면 도전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성향을 가진 것은 생애사적으로 고착된 것이며, 그 혼자만의 것도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몇 십년간 우리 사회의 발전은 고도로 위험감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멀게는 와우아파트에서 가깝게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그리고 남대문 화재를 유발하는 것이었으며, 숱한 산업재해와 대책 없는 재난과 재해로 얼룩진 것이었다. 우리가 곧잘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는 고도로 위험 감수적인 경제성장은 희생자와 낙오자의 관점에서 보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양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국민적 습속을 같은 사회 성원으로서 그저 공유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몇 십년간 모험적이고 위험추구적인 기업 활동 속에서 승승장구했고 대통령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그런 성향에 따른 행동에 대해 언제나 성공으로 보답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고도로 위험 감수적이었던 우리 사회 발전 방식의 총아이고 화신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에 특정위험물질(SRM)이 다량 축적되어 있다면, 이 대통령의 뇌에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떨쳐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적 위험추구 성향이 고도로 농축되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러고 보면 왜 촛불집회에 그토록 청소년이 많은 이유도 일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그토록 험악했던 위험 감수적 발전 속에서 마침내 좀더 안전해진 나라 속에서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발전은 이들이 가진 안전에 대한 감수성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아니라 촛불 든 청소년들이 우리의 미래이고, 미래여야 한다.

<김종엽|한신대 교수·사회학>

(경향신문. 2008.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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