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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국민CEO'라면 사회책임경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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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5-16 14:06 조회18,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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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가 많다. 헐크처럼 웃통을 벗어던진 적나라한 야수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라면, ‘사회책임 경영’은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점잖은 얼굴의 자본주의라 할 수 있겠다. 사회책임 경영론이 확산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워드 보언이라는 미국 경제학자가 1953년에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책을 펴냈을 때만 해도 이 개념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신자유주의 가문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수익 증대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글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인간은 ‘자유’ 사회를 망쳐놓은 지식계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가시 돋친 악담을 퍼부은 적도 있다. 이와 정반대 관점에서 사회책임 경영을 기만적인 이론이라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기업에 쏟아지는 눈총을 무마하기 위한 성형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인권이나 노동 같은 ‘진성’ 주제는 의도적으로 멀리하면서, 사회공헌과 같은 ‘연성’ 주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는 지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소 미흡한 수준이라 할지라도 사회책임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늘어나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임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이제 사회책임 경영을 외면하는 기업인은 국제적으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 기업은 아직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데 사회책임 경영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가? ‘코퍼릿 워치’라는 기업 감시 엔지오가 제시하는 목록을 보자. ①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의식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②사람에게 해로운 상품을 생산·수입·유통·판매하지 말라. ③대중의식을 조종하거나 여론을 조작하지 말라. ④기업운영에서 발생하는 공해 등의 문제를 사회에 떠넘기는 ‘외부화’를 행하지 말라. ⑤성실 납세 의무를 준수하라. ⑥공익에 반하는 로비활동을 하지 말라. ⑦민주적인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 ⑧과소비를 줄이고, 단순성장만을 추구하지 말라. 이런 것들이 과격하고 불순한 주장인가? 내가 보기엔 평균적인 이성과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수긍할 만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다. 기업과 인류와 지구가 함께 살아남으려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식적인 해법이다.

 

그렇다면 사회책임 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나 기업의 사회공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재벌 총수나 최고경영자(CEO)의 의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우리 풍토에서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문제의 핵심은 ‘윗분’의 의중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자기 스스로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시이오라고 떳떳하게 자랑하는 대통령이 계시는 나라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는 국가원수라기보다 시이오로 불리기를 원하는 분이시니,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앞으로 ‘국민 시이오’로 호칭해 드리는 게 합당한 예우일 것 같다. 어쨌든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사회책임 경영을 하는 정상 ‘기업’, 국제기준을 충족시키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최고경영자의 견식과 안목이 변하는 길밖에 없다. 마침 올해는 하워드 보언이 태어난 지 100돌이 되는 해다. 보언에게 오늘날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시이오를 평가해 달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사회책임 경영에 대한 의식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익률을 높일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이 ‘국민 시이오’ 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마 대략 난감해하지 않을까?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8.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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