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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욕망의 정치' 방조한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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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4-23 17:59 조회20,1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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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의 여파가 여전히 크다. 선거후의 고소·고발 사태의 난무는 늘 보아오던 일이지만 이번엔 특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이른바 ‘뉴타운 공약’ 공방이다. 통합민주당 쪽은 정몽준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당선자 여럿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을 이미 검찰에 고발했거나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이 뉴타운 추가 또는 확대라는 허위 공약을 남발했거나 그 거짓을 묵인함으로써 서로 공모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공모자’들은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 행위는 (자기만의 이익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의 개선과 진보를 바라며 선거에 임하고자 했던 선량한 시민들을 농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억제하려 했던 그들의 개인적 욕망을 자극하여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그렇게 튀어나온 개개인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국회 의석을 확보하고자 했다면 그 공모자들은 참으로 저질 정치꾼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이번 선거는 정말 ‘욕망의 정치’가 지배한 듯하다. 전통적인 진보·개혁세력 지지층까지도 포함된 (특히 수도권의) 상당수 유권자들이 아파트값 상승과 재개발 등과 같은 개인적 이해에 매몰되어 사회적 가치나 연대 등의 요구에는 등을 돌려버렸다는 총선 결과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의 표는 부동산 가치 등을 상승시켜 자기 재산 증식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보이는 후보와 정당에게 집중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유리했음은 당연한 일이며, 이에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것 역시 이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민주당은 과연 비난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이 세상 어느 유권자도 자기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 선거정치에 참여한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누를 때에는 대개 그럼으로써 획득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다른 상위의 가치가 존재할 때다. 말하자면 특정 후보나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사적 이익이 충족되는 것보다 더 멋지고 더 근사한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개인적 욕망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번 선거가 욕망의 정치가 되었는지를 우린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기꺼이 희생시킬만한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어렴풋이 찾았더라도 그 가치의 실현 가능성을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의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멋진 비전이나 가치 또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 못했고, 그리하여 결국 많은 유권자들이 욕망의 정치에 휩싸이도록 방조했다는 것이다. 총선 기간 내내 민주당은 줄곧 한나라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당위론만을 펼쳤다. 무엇을 어떻게 견제하겠다는 구체적 설명은 없었다. 한나라당의 성장 정책 기조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는 위험하다면서도 막상 자신의 대안이 무엇인지는 밝히질 못했다. 심지어는 당 대표라는 사람이 신자유주의화의 핵심 정책 수단에 해당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기 비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도대체가 한나라당과 무엇이 다른 정당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니 심각한 사회 문제는 산적해있었건만 민주당은 그 어느 하나도 확실한 선거 현안으로 만들어내질 못했다. 결과는 욕망의 정치 환경에 유리한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같은 일은 2년 뒤의 지방선거와 4년 뒤의 총선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고발도 중요하지만 민주당은 무엇보다 이념과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여 대안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 같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 2008.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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