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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양곡관리법과 직접지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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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5-30 16:31 조회2,8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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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의 경제정책을 돌아보면, 정책의 복고적 후퇴와 과잉정치화의 특징이 뚜렷하다. 정책은 진영 결집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얼마 전의 양곡관리법 공방이 이의 전형적 사례이다. 양곡법은 여야 간 극한 대립 끝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재의를 거쳐 폐기되었다. 개선 방향에 대한 토론과 합의 대신 야당은 쌀값 보장을, 정부는 직접지불제를 앞세우는 것으로 일관했다.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소재로 농업·농촌정책이 활용됐다. 많은 정책들이 이와 유사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양곡법 개정 과정과 관련해 정치적 진영에 따라 찬반이 엇갈렸다고 한다.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양곡법을 지지했고, 여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지지했다. 이런 공방은 쌀 문제, 농업·농촌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모든 정책은 장단점이 있다. 목표를 잘 세우고, 목표를 위해 정책들을 조합해야 한다. 사회구성원들이 협력해야 정책은 좋은 결과를 낸다. 

정책을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사용하면, 단기적으로 여론을 균열시키고 지지자를 결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 공방으로 일관하면, 다양한 이해관계는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없다. 어느 순간 다수 유권자들이 정책적 무능을 심판하는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번에도 야당이 양곡법을 내세우니 정부와 여당은 직접지불제를 들고 나왔다. 양곡법과 직접지불제가 서로 대립되는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쌀 가격 안정과 직접지불제는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정책조합이 필요한 문제다. 

쌀 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책수단에 대한 연구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쌀 가격을 정부가 보장하라는 주장도 있지만, 전체 농산물의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시장 기능을 활용하면서 가격위험을 줄이고 소득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는 편이다. 어쨌든,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정교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직접지불제 확대를 내세운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정부는 농업직불금 예산을 현재의 2조4000억원에서, 2024년 3조원 이상, 2027년 5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돈은 농업·농촌과 사회 전체에 생명수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 농촌과 지역에서 삶의 터전이 유지되어야 사회가 폭발하지 않는다. 농업·농촌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해야 할 역할도 있다. 농업·농촌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도시민도 건강을 지킨다. 문제는 예산과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악용되거나, 실정을 모르는 이들이 오·남용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능력과 의지를 갖춘 실천가·청년들을 북돋아주는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관련하여, 최근 관찰한 전북 진안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진안은 군 면적에서 산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 곳이다. 교통망은 크게 개선되었으나 인구가 급감해 지역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80년대에 6만~7만명이던 인구가 1990년대에는 4만명대로, 2005년에는 2만명대로 줄었다. 폐교와 빈집이 늘고 대중교통망은 오히려 축소됐다. 이제 귀농·귀촌인구, 지역과 연관된 관계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구체적 방법과 실천이다.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결합시키는가가 관건이다. 

진안에 사는 50대의 A씨는 사회적 경제의 조직화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진안에서는 그간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유입해서 새로운 지역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착에 성공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3년이면 3분의 2는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A씨는 귀농·귀촌인, 기존 주민, 도시민들과의 문화적·사회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씨는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성화하고 산림이 많은 지역 환경에 맞는 농법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탄소 발생을 줄이고, 환경을 지키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농사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런 일은 사회적 경제 조직, 지방정부·의회의 파트너십이 없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A씨는 여러 개의 공동체 조직을 만들고 소통하는 데 주력한다. 

최근 누군가 왜 사회적 경제 조직의 청년에게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가 물어서, A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당신의 자식이다. 그들이 우리 동네를 지킨다.” 세금이 농촌과 환경을 지키는데,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잘 쓰이길 바란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신문 2023년 5월 17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51703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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