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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유럽 새 극우파의 ‘솔깃하지만 위험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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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27 15:16 조회20,9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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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극우파는 철저히 보수적인 일부 중산층의 가려운 심정을 ‘인권’의 언어를 구사하며 긁어준다. 이들 메시지의 핵심은 이슬람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현실적 해법이 유럽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 이 주장이 “일리 있다”는 반응을 얻으면서 주류사회 진입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신사가 차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걸어온다고 치자. “우리 동네 노인정 시설에 지원을 더 해야겠습니다. 서민을 위한 복지도 더 늘려야지요. 하지만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만큼 우리 시민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이 땅에 들어와 살면서 애들 많이 낳고 복지혜택만 누리고 우리 젊은이들 일자리 다 빼앗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거 아닙니까? 외국인들 인권만 인권입니까? 도대체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굽니까? 형편이 좋으면 모를까, 요즘 같은 때엔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게 궁극적인 해법이 아닐까요?” 얼핏 솔깃하게 들리는 이런 논리가 요즘 유럽을 휩쓸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극우파, 즉 ‘뉴 파 라이트’(New Far Right)의 등장이다. 예전의 극우파와는 사뭇 다르다. 군복 비슷한 걸 걸치고 깡패들처럼 몰려다니거나 스킨헤드로 대중에게 겁을 주던 모습이 더는 아니다. 교육받은 사람의 화법을 구사하여 상대를 안심시키고, 사실은 철저히 보수적이지만 스스로 네오나치처럼 무식하게 보이기는 싫어하는 일부 중산층의 가려운 심정을 교묘하게 긁어준다. 새로운 극우파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극우파의 오랜 숙원이던 주류사회 진입이 꽤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들 메시지의 핵심은 이슬람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현실적’ 해법이 유럽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덴마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이 사회의 조화를 깬다고 믿는다. 옛 동독지역 주민의 4분의 3 이상이 이슬람 종교활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 절반이 이슬람과 테러리즘이 동일하다고 본다. 프랑스 국민 열에 네 사람이 무슬림 주민들이 프랑스의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고 걱정한다. 오스트리아 국민의 과반수가 이슬람이 서구식 삶의 양식을 저해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런 대중적 정서를 바탕으로, 그리고 극우파의 능란한 변신에 힘입어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이 보수연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사회적 진보의 대명사이던 스웨덴에서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2010년 총선에서 20석을 차지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노르웨이의 반이민 극우정당인 진보당은 현재 의석수로 두 번째로 큰 정당이 되어 있다. 덴마크의 인민당은 2007년 총선에서 14%의 지지를 받았으며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들은 모두 합해 약 30%의 지지율이라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원조 극우파이던 장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이 차기 대통령직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의 경우 새로운 극우정당이 출현하진 않았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구시대 극우파인 네오나치와 집권 보수당 사이에 존재하는 약 15% 정도의 정치적 공간이 새로운 극우파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극우파는 ‘인권’의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스웨덴민주당은 소매치기의 손목을 자르는 식의 ‘야만적’인 이슬람 문명을 개명된 유럽이 용인해서야 되겠느냐며 유권자들의 말초적인 정의감을 자극한다. 네덜란드의 자유당에서는 무슬림들을 흔히 파시스트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예만 보더라도 인권을 주장하느냐 마느냐 하는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인권을 내세우는지가 인권에 있어 더 중요한 판단기준임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새로운 극우파가 주로 이민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가 주목해야 될 이유가 있다. 유럽 각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처음부터 이주에 의해 국민 정체성이 만들어진 곳이 아닌 후발 이민국가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들이 있다. 비교적 동질적인 선주민들의 존재, 최근 몇십년 사이에 이민자들이 갑자기 늘어난 점, 이민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경험이나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점, ‘다문화’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만 그것이 내면화되지 못한 점 등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하지만 유럽과 한국 사이에는 다른 점도 많다. 유럽의 이주 문제가 자유주의 사회의 보편적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실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국의 이주 문제는 최소한의 인권존중이라는 측면에서조차 미흡한 데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맥락이나 차원이 많이 다른 문제들이라고 봐야 한다. 유럽의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바가 우리 감각으로 그다지 ‘악성’으로 들리지 않는데도 양식있는 유럽인들이 현 사태를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이다. 또한 유럽의 경우 이주 물결이 경제지구화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시민권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우리의 경우 민주화와 경제지구화 경향과 이주의 증가 추세가 비슷한 시기에 맞물렸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의 이주 문제는 이주만의 독자적인 문제영역이라기보다 한반도 전체 상황 그리고 아직도 진행중인 정치, 경제, 사회 민주화의 과제 내에서 함께 다루어야 할 이슈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극우적 주장들이 아직은 이주 문제보다 주로 우리 현대사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둘러싼 문제영역에서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황을 이렇게 큰 틀에서 볼 때 이주노동자, 탈북 정착인, 비정규직 노동, 장기적 인력 수급 등을 서로 연관된 문제로 꿰어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
(한겨레. 201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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